“지금 위기를 멈추지 않으면 다음 멸종 대상은 인간일 수 있다.”
2일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코로나19와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남성 중심의 사회·경제적 문화라는 진단이 나왔다. 강연자로 나선 반다나 시바 세계화국제포럼(IFG) 상임이사는 인도 현지 화상연결을 통해 “팬데믹과 산불, 홍수, 사막화 같은 기후변화는 자연을 죽은 존재로 치부하고, 인간이 자연보다 강하다는 오만에서 빚어진 것이다. 증상이 다를 뿐 원인은 같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들이 ‘자연을 지배하고, 모든 사회적 결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폭력적이고 무지한 사고방식으로 생태계를 파괴했다”고 덧붙였다. 반다나 시바 상임이사는 환경과 여성 해방을 위해 활동해온 사상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전지구적 위기가 닥쳤을 때 희생을 요구받는 건 여성이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위기의 시대에 늘 여성이 가족과 사회를 책임졌습니다. 그때마다 물리적, 사회적 폭력이 여성에게 집중됐어요.” 나아가 그는 여성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을 중심에 놓고 생태와 문화, 민주주의 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반다나 시바 과학·기술·생태학 연구재단 설립자(화면)가 화상 연결을 통해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아래 왼쪽부터 토론자로 참석한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대표,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어진 토론에서도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재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여성 리더십의 활용을 요구하는 주장이 나왔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팬데믹 위기 속에서 심화하는 여성 불평등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폐허의 장에서 왜 여성들이 늘 남은 부담을 져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개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은 돌봄 부담과 가정폭력 증가, 불안한 고용 등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감염 위기 와중에 목숨을 걸고 일하거나, 남성들보다 훨씬 많은 해고를 당하는 게 현실이다. 거대한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백영경 제주대 교수(사회학)도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은 자녀·부모 등 돌봄의 의무에 허덕이지만, 정작 자신은 돌봄 공백 속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노동을 평가해 사회적 수당을 주는 등 다른 가치체계를 적용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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