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유독 가난한 이들을 더 괴롭히지 않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일 ‘2020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의 문을 열면서 ‘케냐 빈곤층 초등생의 학업능력과 구충제 효과’를 예로 들어 이 까다로운 질문에 답했다. 1990년대 중반 말라리아와 기생충이 기승을 부리던 케냐에서 초등학생에게 흔한 방식의 ‘교재 지원’은 학습능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말라리아나 기생충 탓에 아이들이 자주 아팠고 교사 결근도 많았던 까닭이다. 그는 비정부기구(NGO)와 함께 전통적인 방식인 학습교재 제공 대신 ‘구충제’를 지원했다. 프로그램 뒤 아이들의 결석률이 25%가량 줄었고, 질병 전파가 감소하자 인근 학교 어린이들의 출석률까지 덩달아 높아졌다. 그는 ‘팬데믹 이후, 빈곤퇴치를 위한 사회실험’을 주제로 한 이날 화상 기조강연에서 “프로그램 이후 여아들의 중학교 진학률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소요된 비용을 100번 갚을 만큼 (대상 학생들의) 미래소득이 증가했다”며 “실험적 접근법을 바탕으로 한 가치있는 투자가 전세계 인구의 생명을 구하고 삶을 개선한다”고 진단했다.
크레이머 교수는 케냐의 사례처럼 과감한 정책실험이 사회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팬데믹으로 세계가 위기에 처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위기 속에서 정책실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교육·의료·소득 등 사회 전반의 양극화 심화와 관련해, 그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혁신적 정책실험 접근법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도 동일한 접근을 허락하는 디지털 기술 활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 설립한 엔지오 ‘개발을 위한 정밀농업’(PAD)을 통해 인도와 파키스탄 농민들에게 휴대전화 문자·음성메시지로 농사법을 알려주는 ‘디지털 농업’으로 병충해와 소출량 손실이 줄어들고, 농민 350만명의 농사 비용이 극적으로 하락한 결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에서 생체 인증 스마트카드 도입으로 노동자의 임금 수령 기간은 30% 빨라지고 이탈리아에서는 정부 세입이 4억7200만유로(약 6290억원) 증가했다는 정책실험 결과를 얻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적극적인 빈곤해결 실험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란 얘기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2020 아시아미래포럼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 강연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