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희 씨제이(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에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씨제이(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보호 대책을 내놨다. 올해 들어서 숨진 13명의 택배노동자 중 씨제이대한통운과 관련 있는 이는 총 6명이고, 이 중 5명이 택배기사였다. 택배노동자 쪽에서는 “아쉽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했다.
씨제이대한통운이 22일 발표한 대책은 ‘분류 업무’에 처음으로 대규모 인력 투입 방침을 밝힌 게 핵심이다. 매년 500억원을 들여 분류 작업에 지원인력 4천명이 투입된다. 택배기사 5명당 1명꼴로 지원인력이 공급되는 규모로, 다음달부터 투입된다. 그동안 씨제이대한통운을 비롯한 택배사들은 “분류 업무는 택배기사의 고유 업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택배노동자들은 분류 업무를 택배기사의 과로를 유발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분류 업무는 택배기사가 지역 서브터미널에서 자신이 맡은 권역의 물량을 분류해 차에 싣는 일이다. 택배기사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배송에 나서기 전까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5시간 넘게 분류 업무에 매달려왔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배송 업무와 달리, 분류 업무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급받지 못해 ‘공짜 노동’ 논란도 일었다. 이 밖에도 회사 쪽은 택배기사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성인이 하루 배송할 수 있는 적정량을 산출하고, 특정 택배기사에게 초과 물량이 쏠리는 걸 방지하고자 기사 3~4명이 팀을 이뤄 초과 물량을 분담하는 ‘초과물량 공유제’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도 적극 권고할 방침이다. 올해 말까지 전체 집배점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 여부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내년 상반기 안에 모든 택배기사가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신규 집배점은 계약 시, 기존 집배점은 재계약 시 산재보험 100% 가입을 권고하겠다고도 회사 쪽은 밝혔다. 다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택배기사들은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터라, 2만여명에 이르는 택배기사 전원의 산재보험 가입은 보험료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외에도 회사 쪽은 △건강검진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 △작업강도 완화를 위해 2022년까지 서브터미널 100곳에 소형상품 전용 분류장비 구축 △2022년까지 택배기사의 긴급생계지원 등에 쓰일 1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 조성 등의 대책을 내놨다.
이날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입장을 내어 “택배산업 현장에 상존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씨제이 쪽 발표를 대체로 환영했다.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정부가 주도한 분류 작업 인력 투입에 대해 ‘시늉만 했다’는 비판이 컸으나, 4천명 정도의 대규모 인력 투입이라면 실효성이 있을 것이란 기대다. 대책위는 다만 “제대로 집행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며, 사회적 대화기구인 ‘민관공동위원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신민정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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