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 관련 최고 의사 결정자 간의 담판도 무위로 돌아갔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매각 불발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해온 플랜비(Plan B)에 착수할 움직임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새로운 인수 희망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대주주 금호산업과 인수 계약을 맺었던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매각 무산에 따른 계약금 반환 여부를 놓고 소송전에 나설 전망이다.
3일 금융당국과 채권단 설명을 종합하면, 전날 현산은 산은에 “12주간의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을 보냈다. 지난달 26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정몽규 현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인수가 조정과 인수 뒤 자금 지원 등을 담은 제안에 대한 답변 성격의 전자우편이다. 사실상 이 회장의 제안을 거부하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산의 이메일에 대해 채권단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플랜비를 포함한 다음 스텝(단계)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산의 재실사 요청을 인수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채권단이 해석하고, 이후 단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실제 지난달 말 이 회장과 정 회장 간의 회동을 시장에선 ‘최후 담판’으로 내다봤다. 또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이 정 회장에 던진 제안을 ‘마지막 협상 카드’라는 평가도 나왔다. 제안의 정확한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2조5천억원에 이르는 인수가격을 낮춰주거나 인수 뒤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등 인수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방안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시장에선 이 회장이 최대 1조원 수준의 인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채권단은 매각 무산에 대비한 여러 대응책을 수립해 놓은 상태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말 매각을 시도할 때부터 여러가지 플랜비를 준비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상 영업을 위한 추가 자금 지원과 8천억원 상당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의 분리 매각 등이 채권단이 들고 있는 대응 목록으로 알려졌다. 특히 추가 자금 지원은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조성한 공공자금인 ‘기업산업안정기금’이 나설 공산이 높다. 기금 안팎에선 조만간 아시아나항공 지원을 위한 기금 위원들의 소집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매각이 무산 수순에 접어든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말 이후 불거진 코로나19 확산이다. 여객수가 급감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항공업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매매 계약을 체결한 현산 입장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 전개였던 셈이다. 이에 현산은 잔금 지급을 미루고 인수가격 재산정 등을 위한 재실사를 줄곧 요구해왔다.
매각 불발 뒤 아시아나항공은 사실상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가는 한편,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과 인수 주체인 현산 간은 2500억원 상당의 계약금 반환 여부를 놓고 소송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매각 불발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지루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이외 별개로 금호산업은 매각 불발에 따라 주식 매각 대금 3200억원 가량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또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다른 자산을 매각하기에는 여력이 없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산은이 주도적으로 재매각을 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산 쪽은 이날 매각 무산 등과 관련해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박수지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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