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1천억원 상당의 미지급금 해결을 포함한 선결조건을 오는 15일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는 지난 3월부터 셧다운(운항중지)에 돌입하며 돈줄이 마른 이스타항공이 해결하기 어려운 요구로, 두 회사 사이의 주식매매 계약은 무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2일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에 선결조건 이행 사항 및 대주주의 지분 헌납 처리 방식과 관련한 논의를 하자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이에 제주항공은 1일 이스타항공 쪽의 선결조건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보고 “10영업일 이내에 선결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기한은 오는 15일이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해결하라고 요구한 선결조건으로는 △타이이스타제트의 항공기 지급보증 해소와 △체불임금을 포함한 조업료와 사무실 운영비, 보험료 등 각종 미지급금 해결이다. 미지급금만 체불임금 250억원 상당을 포함해 1천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스타항공에 현금이 없다는 점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월부터 직원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고, 조업료 등 협력사 대금도 체납된 상태다. 이스타항공의 올해 1분기 자본총계는 -10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이스타항공 내부는 끓고 있지만, 일단 조만간 제주항공에 다시 공문을 보내 현 상황을 설명하며 미지급금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제주항공이 받아들이지 않고 ‘선결조건 이행’이라는 원칙을 계속 고수한다면, 사실상 인수는 무산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이스타항공의 실질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10억원 가치(주식매매 계약서 기준)에 상당하는 지분을 포기한다는 카드도 소용없게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가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에게 이스타항공 셧다운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주항공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인수하기로 한 기업을 운항중지시켜 영업활동을 못 하게 해놓은 뒤 사실상 인수를 포기한 셈이서다. 그간 양쪽은 체불임금 책임 소재, 셧다운 지시 여부 등 협상 주요 대목과 관련해 진실 공방을 벌여왔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1일 회사 경영진과 만나 확인한 결과, 지난 3월20일 이석주 대표는 국내선만이라도 운항 유지를 원하던 최종구 대표에게 “셧다운을 하고 희망퇴직을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나흘 뒤인 지난 3월24일부터 전면 운항중지에 들어갔다. 그동안 제주항공 쪽은 셧다운 지시 사실에 대해 계속 부인해왔다.

향후 양쪽은 책임소재를 가리는 소송전에 돌입하고, 이스타항공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으로는 매각 무산 가능성이 커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닌 평소라면 딜이 깨지더라도 재매각을 추진해볼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가 사겠느냐”며 “매각이 무산된다면 이스타항공은 기업회생을 신청하더라도 잔존가치가 크지 않아 청산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매각이 무산되더라도 이스타항공이 정부의 저비용항공사(LCC) 지원 대상이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봤다. 지난달 29일 최종구 대표가 “제주항공의 인수만이 회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에이케이홀딩스(제주항공의 모회사) 본사 앞에서 셧다운 지시 등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인수 완료를 촉구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