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구속 영장이 청구된 4일 삼성이 무노조 경영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수립 등을 위한 방안을 내놨다. 이날 삼성의 발표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구체적인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에 대한 후속 조처로 나온 것이지만 원론 수준에 그쳐 대안으로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준감위는 삼성이 내놓은 이행 방안에 대해 다시 보완할 것을 재요청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노동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과 관련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관계 자문그룹’을 이사회 산하에 두고 노사 정책을 자문하고 개선 방안도 제안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직원 대상 노동 관련 준법 교육 의무화, 컴플라이언스팀 준법 감시활동 강화, 노동·인권 단체 인사 초빙 강연 등도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1일 삼성 사장단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초청해 ‘미래지향적 노사관계 형성’을 주제로 강연을 들은 것은 이러한 이행 방안의 일환으로 보인다.
삼성의 발표는 이날 열린 준감위 회의에도 보고됐다. 지난달 7일 준감위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7개 계열사에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경영체계의 수립 △노동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방안 등의 구체적인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는 그동안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이사회 중심 경영이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문제 해결 등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경영체계의 수립’과 관련해 삼성은 “준법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경영체계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며 “법령·제도 검토, 해외 유수 기업 사례 벤치마킹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외부 전문기관에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방안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 발전 방안 논의 등을 위해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전담자를 지정할 계획”이라는 원론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이에 대해 준감위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보도자료를 통해 “후속 조치로 관계사들이 마련한 구체적 이행방안에 진전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행방안을 수행하기 위한 세부적 과제선정과 구체적인 절차, 로드맵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준감위는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 절차 규정을 정비하고 산업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 “시민사회와 협력해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도 더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삼성의 후속 조처가 크게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제개혁연대 부소장)는 “자문그룹 등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던 것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하나도 없다”며 “시민사회와의 소통 부분도 원론적인 이야기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허탈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준감위는 유일한 삼성 내부 위원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위원직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준감위는 “이인용 위원은 삼성전자의 CR(Corporate Relations) 담당으로 최근 위원회 권고를 계기로 회사가 사회 각계와 소통을 대폭 확대함에 따라 회사와 위원회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부득이 사임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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