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발표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대상 잣대 중 하나인 ‘총차입금 5천억원 이상’이 불합리하다는 항공업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는 모기업의 재무 상태를 고려해 항공기 장기 임대 계약을 맺어 부채가 늘어난 에어부산은 지원대상에 들어가는 데 반해 나머지 저비용항공사(LCC)는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21일 정부의 ‘총차입금 5천억원 이상이면서 근로자 수 300명 이상일 것’이라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기준을 단순히 적용하면, 국내 엘시시 중 제주항공·에어부산만 지원대상에 들어간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엘시시 4곳의 총차입금(연결·3월 말 기준)은 제주항공(6416억원), 에어부산(5805억원), 진에어(4256억원), 티웨이(3722억원) 순이다.
업계는 제주항공은 엘시시 중 덩치가 큰 터라 부채가 많은 것은 자연스럽게 보지만 에어부산이 5천억원 이상 부채를 갖게 된 배경은 좀 다르다고 말한다. 핵심은 여타 항공사에 견줘 에어부산이 이상할 정도로 리스부채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리스부채는 5305억원으로, 총차입금이 5천억원을 밑도는 티웨이(3657억원)나 진에어(3956억원)는 물론 제주항공(4932억원)보다도 300억원가량 더 많다.
에어부산이 리스부채 규모가 유달리 큰 건 항공기 임대 기간을 여타 항공사에 견줘 길게 잡아 계약을 맺은 탓이다. 통상 엘시시는 운용리스 계약을 5년 안팎으로 잡지만, 에어부산은 20년 장기 계약을 맺은 비행기가 여러 대다. 이런 탓에 항공기를 25대 보유한 에어부산이 45대 갖고 있는 제주항공보다도 리스부채 규모가 커졌다. 업계에선 에어부산이 이런 계약을 맺은 건 수년간 자금난에 빠져 있는 모회사 아시아나항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본다. 실제 에어부산은 리스부채 중 대부분(4397억원)을 아시아나항공에 갚아야 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항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충격은 엇비슷한데 모회사와의 거래 탓에 부채가 많은 곳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불공평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총차입금 절대 규모만을 잣대로 삼은 정부의 결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지원대상 기준 논의 과정에서 항공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차입금 기준을 다소 낮춰 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기금이 항공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도 지원하는 만큼 개별 사정을 모두 고려할 경우 지원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신속성도 약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면서 국토부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정부가 “핵심기술 보호, 산업생태계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금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지원 예외 조항을 둔 탓에 총차입금 기준을 못 맞추더라도 기금지원이 원천봉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또 다른 심사를 받아야 하는 만큼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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