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1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경영권 승계 관련 불법행위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 요구 등을 담은 권고안을 제시하면서 삼성 쪽에 요구한 답변 시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삼성의 답변 수위에 따라 지난 2월5일 출범 후 두달 남짓 운영된 준감위 활동이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준감위의 한 위원은 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준감위 권고안에 대한 삼성의 답변이 사회적 수용성 정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준감위 활동을 지속할 근거도 약해진다”고 밝혔다. 답변 내용이 부실할 경우 위원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권태선 위원은 최근 환경운동연합 등 소속 단체의 요구로 위원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 위원이 언급한 준감위의 권고안은 지난달 11일 나왔다. 권고안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법 위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 △노동법규 위반에 대한 반성과 사과 및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준감위 활동과 이재용 부회장 재판 관련성 논란을 불식시킬 조처 마련 등의 요구가 담겼다. 삼성의 변화를 끌어내려는 준감위의 의지를 담았다는 게 준감위의 설명이다. 준감위가 요구한 답변 시한은 오는 10일이지만, 이 부회장 등 삼성 쪽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준감위 쪽은 삼성의 답변 수위를 통해 준감위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을 가늠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의 성격도 있다고 말한다. 준감위의 또다른 위원은 “우리가 문제를 냈으니 답은 삼성이 풀어야 한다”며 “(삼성 답변을 본 뒤) 후속 대응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시민사회 쪽에서도 감지된다. 삼성 감시자로 오랜 활동을 해온 경제개혁연대를 이끌고 있는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이 부회장의 사과 내용에 따라 준감위의 공과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출범 두달이 흘렀지만 ‘준감위 무용론’도 여전하다. 그간 삼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각종 이슈에서 준감위가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특히 지난 1월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죄를 다루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감위 활동을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준감위가 이재용 부회장 감형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준감위는 “양형은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라는 이유로 거리를 둬왔다.
삼성전자의 ‘노조가입 독려 이메일’ 삭제 사건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 삼성 계열사 이사들의 독립성 문제 등도 준감위가 명료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 사안으로 꼽힌다. 김우찬 교수는 “삼성의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한 이들이 최근 삼성 계열사들의 이사회 구성원이 됐는데도 준감위 차원에서 이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며 “독립성이 의심되는 인물들이 삼성 계열사 이사가 된 것은 준감위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준감위가 이 부회장의 용퇴를 건의해야 한다.”(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등의 강경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삼성이 대국민 사과에도 전향적 변화로 나아가지 못한 과거 사례에서 누적된 불신도 반영돼 있다.
준감위 쪽은 일부 사안에 목소리를 내지 않은 데 대해 스스로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명한다. 준감위의 한 위원은 “도대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입장이 뭔지, 앞으로 전향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동안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된 탓에 준감위 차원에서 무언가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 쪽이 시한 내에 권고안에 대한 답변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삼성 쪽은 <한겨레>에 “(답변 내용과 수위를)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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