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엘지(LG)화학과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결정을 내린 이유를 담은 판결문을 지난 20일(현지시각) 누리집에 공개했다. 아이티시는 이 판결문에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고의적인 증거인멸 행위로 인해 소송 진행에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방해받았다”며 결정 이유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업계에선 최종 판결 전 합의를 시도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22일 엘지화학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두 회사의 배터리 영업비밀침해 소송 판결문을 보면, 아이티시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소송을 인지한 2019년 4월30일부터 증거보전의무가 발생했음에도 적극적으로 증거가 될 수 있는 문서들을 삭제하거나 삭제되도록 방관했다고 판단했다. 아이티시는 “통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정당하게 문서삭제가 진행되었다면 문서삭제를 위해 발송된 지시 내용을 없애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증거인멸 행위가 조직적이며 고의적으로 진행됐다고 봤다. 앞서 아이티시는 지난달 14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소송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하는 등 법정을 모독했다며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조기패소 판결’이 내려지면 통상적인 변론 등의 절차 없이 최종결정만 남게 된다. 최종결정 예정일은 오는 10월5일이다.
아이티시는 또 포렌식 명령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티시는 “포렌식 명령의 중요한 목적은 증거인멸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는 모든 문서들을 복구하기 위한 것인데, 회사와 회사 쪽이 고용한 포렌식 전문가는 아이티시 행정판사의 포렌식 명령과는 다르게 조사범위를 제한시켰다”고 했다.
앞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지난 3일 아이티시의 이런 예비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이티시는 다음달 17일까지 이의신청 검토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아이티시가 검토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오는 10월5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고 거부하면 위반 사실은 그대로 인정된다.
엘지화학은 지난해 4월 아이티시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을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로 제소했다. 아이티시의 이번 예비결정이 최종결정으로 이어지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향후 사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으로 2차전지 관련 제품 판매가 금지될 뿐 아니라 엘지화학에 막대한 손해배상금까지 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엘지화학은 “남아 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성실하게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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