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인텔 등이 수백억원의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관련 특허 기술을 삼성전자가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미국 법원이 2억 달러(한화 약 2400억원)의 배상 판결을 조만간 내릴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이에 불복해 항소에 나서기로 했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3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1심)은 ㈜케이아이피(KIP)가 보유하고 있는 벌크 핀펫(FinFET) 특허에 대해 삼성전자가 특허를 ‘고의’로 침해했다고 보고, 2억 달러의 배상을 해야한다는 내용의 ‘조건부 결정’을 내렸다.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케이아이피가 이 결정을 받아들이면 판결이 확정된다. 케이아이피는 이를 즉각 수락할 방침인 터라 최종 판결은 며칠 안으로 나올 예정이다. 케이아이피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자회사로, 특허전문기업이다.
벌크 핀펫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등에 쓰이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이다. 소비 전력을 낮춰 모바일 기기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난 2001년 이종호 서울대 교수(당시 원광대 재직)가 발명해 2003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 뒤, 2016년 7월께 특허 사용료를 일정 비율로 나눠갖기로 하고 케이아이피에 특허권을 양도했다.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인텔과 애플은 각각 2012년과 2019년 케이아이피와 합의 후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반면 2015년부터 이 기술을 써온 삼성전자는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이에 케이아이피는 지난 2016년 11월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한겨레>가 입수한 재판부의 결정문을 보면, 2002년 국내 특허를 먼저 출원한 이종호 교수는 이 특허 기술의 내용을 삼성전자에 설명한 뒤 라이선스(사용허가) 계약을 요청했다. 이 교수는 2011년과 2012년에도 사용료 합의를 요청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가 이 교수에게 해당 기술에 대한 설명만 듣고 사용료는 내지 않은 채 기술을 ‘고의로 베껴서’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재판 과정에서 이 교수가 원광대에서 옮겨 근무하던 경북대 쪽에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도록 유도하거나 (▶관련 기사 :
[단독] 인텔이 100억 낸 국내 기술, 삼성은 특허료 안내려 ‘꼼수’) 산업통상자원부에 케이아이피의 ‘산업 기술 무단 유출’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사실(▶관련 기사 :
[단독] 삼성, 산자부 움직여 ‘특허권 소송상대’ 기술 유출 조사)이 드러나기도 했다. 소송 자체를 기각시키거나 ‘기술 유출’로 몰아가려는 압박 전술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강인규 케이아이피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하고 삼성전자 사장단의 준법서약식도 열렸는데 기술을 탈취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전자가 무슨 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을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며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에게 수백억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을 감당하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고사되기를 바라며 버티지말고 지금이라도 불법행위를 중단하고 정당한 기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쪽은 <한겨레>에 “핀펫 기술은 삼성이 개발한 자체 기술이다. 미국 법원이 특허전문회사 주장을 받아들여서 안타깝다. 항소를 통해 삼성전자의 고유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받겠다”고 밝혔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