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총수일가가 고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법정비율로 나눠 상속했다.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배분이 마무리됨으로써 총수일가 사이의 경영권 분쟁은 일단 마무리됐지만, 향후 계열분리 가능성은 물론 분쟁 재발 가능성도 잠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칼은 30일 오후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 17.84%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애초 한진칼 지분이 없었던 이 고문은 5.31%를 보유하게 됐고 3남매는 모두 4.176%씩 상속받아 조 회장은 6.52%, 조 전 부사장은 6.49%, 조 전무는 6.47%의 지분을 갖게 됐다. 민법 제1009조에 규정된 법적 상속비율인 1.5(배우자):1(자녀):1:1의 비율에 따른 것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지난 29일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국세청에 상속을 신고했고, 가족이 법정상속비율대로 한진칼 지분을 나눠 가졌다. 고 조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0.01%)과 비상장기업인 정석기업(20.64%) 지분도 법정 상속비율로 나눴다”고 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진그룹은 ‘공동 경영’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한 명에게 지분을 몰아주지 않았으므로 그룹 의사결정과정에 가족 합의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는 ‘땅콩회항’, ’물컵갑질‘ 사건 이전까지 각각 대한항공·칼호텔네트워크·진에어 등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조원태 회장은, 고 조 회장의 별세 이후 한진칼 대표이사에 선임됐지만,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을 두고 난항을 겪으며 가족간 갈등구조가 노출되기도 했다. 특히 이명희 고문의 한진칼 지분 보유가 향후 그룹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법정 비율로 상속하면서 가족 간 절대적인 강자가 없는 구조가 됐다”며 “지분구조 때문에 사실상 공동경영 체제로 가게 될 것이고, 이 고문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3남매의 지분이 비슷한 상황에서 이 고문이 힘을 실어주는 쪽이 주주총회 등에서 우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룹 경영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단일최대주주가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 15.98%)가 된 터에 가족간 분쟁이 발생하면 그룹 경영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현재 한진칼 지분 구조는 총수일가가 28.95%, 케이씨지아이 15.98%, 델타항공 10%, 반도건설 5.06%로, 전체 지분의 약 60%가 향후 경영권 분쟁 시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주식으로 추정된다. 박주근 시이오(CEO)스코어 대표는 “가족들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어떻게든 서로 중재할 수밖에 없겠지만, 케이씨지아이가 경영 감시·견제를 하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박상인 교수는 “그룹이 계열분리 될 가능성이 높은데, 어떻게 분리할지 합의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지분과 부동산 등을 포함해 2700억~2800억원 선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고액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경우 5년 동안 6번에 걸쳐 상속세를 나눠낼 수 있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