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오는 27일 열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이 불확실해지면서 대한항공은 의결권 모으기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했다는 논란마저 일고 있다.
조 회장의 이사 연임 안건은 대한항공 주총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진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지난 5일,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안을 안건으로 올리기로 결정하며 “글로벌 경기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주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항공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정관을 보면, 이사 선임은 ‘특별 결의’ 사항에 해당해 조 회장이 연임하려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즉 66%가 넘는 동의가 필요하다. 대개 이사 선임은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가 필요하지만 대한항공은 1999년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이사 선임 기준을 높였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은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조 회장 등 특수관계자와 한진칼 등의 우호 지분을 모두 합치면 33.35%다. 조 회장 연임을 위해서는 약 33%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인 것이다. 대한항공은 애초 ‘의결권 있는 주식 2000주 이상을 소유한 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했으나, 지난 11일 ‘의결권 있는 주식을 소유한 전 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한다고 공시하는 등 ‘한 주’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 총력전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대한항공 지분 11.7%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조 회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대한항공이 의결권 위임에 전력을 다하는 배경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대한항공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조 회장 연임 찬반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연임 반대 쪽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국민연금이 우호 지분 22% 이상을 확보한 뒤 반대표를 던진다면 조 회장 연임을 저지할 수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도 “배임·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을 막겠다”며 위임장을 모으고 있다. 위임장 대결을 선언한 이상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변호사)은 “국민연금이 올해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한 만큼 조 회장 연임 찬성표를 던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결권 자문기관 중에선 서스틴베스트가 ‘연임 반대’ 권고를 낼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강요’ 논란을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회사 안팎에서 의결권을 모으는 것도 이런 다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최근 대한항공 임원 등이 직원들에게 직접 “회사에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려 한다”며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사주 지분은 2.14%다. 문제는 임원의 요구를 직원이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참여연대 등은 이를 ‘사실상의 강요’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일부 직원 주주에게 적법한 방식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했으며 강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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