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된 한국지엠 연구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TCK)에서 개발할 것으로 여겨졌던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가운데 콤팩트 에스유브이가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개발되는 것으로 확인돼 ‘지엠 말 바꾸기’ 논란이 일고 있다. 산업은행과 노조의 반대에도 법인 분리를 강행하던 지난해 ‘당근’으로 제시했던 신차 개발 물량이 돌연 사라진 셈이다. 한국지엠 쪽은 “콤팩트 에스유브이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콤팩트 에스유브이는 한국에서 개발하지 않게 됐다”며 “개발 중인 트랙스 후속 차량인 나인비유엑스(9BUX·프로젝트명)와 향후 창원공장에서 생산하게 될 (에스유브이와 승용차 중간 모델인) 크로스오버유틸리티를 한국이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도 전주명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연구개발 부사장이 전날 노조 임원들을 만나 “콤팩트 에스유브이는 중국에서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넘겼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연구개발 법인 분리, 신설 논란 때 약속한 한국지엠(GM)의 연구개발 물량 할당을 놓고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지난해 10월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통역과 선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러나 한국지엠은 지난해 7월22일 카허 카젬 사장 이름으로 발표한 문서에서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신설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라며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지엠의 차세대 ‘콤팩트 에스유브이’ 제품들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를 시작으로 지엠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몇달간 법인 분리를 둘러싼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해 12월18일 분리에 합의했다. 분리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이동걸 산은 회장은 당시 “한국지엠 연구법인은 ‘준중형 에스유브이’와 크로스오버유틸리티 중점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됐다”며 “손실은 없고 이익은 많은 계약”이라고 말했다.
최종 표현이 ‘콤팩트’에서 ‘준중형’으로 바뀌었지만, 둘 다 통상 소형차와 중형차 중간인 ‘시(C)세그먼트’로 분류된다. 이에 노조는 신설 연구법인에서 콤팩트 에스유브이를 개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손실은 없고 이익은 많은 계약’이란 설명처럼, 이미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나인비유엑스가 아닌 ‘새로운’ 에스유브이와 크로스오버유틸리티 2종이 한국의 신설 연구법인에 맡겨질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준중형은 곧 시세그먼트인 콤팩트 차량을 뜻한다”며 “한국지엠 쪽과 합의한 준중형 에스유브이는 나인비유엑스가 맞다”고 말했다. 또 “합의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조 관계자는 “카허 카젬 사장이 처음 콤팩트 개발을 언급하며 협상이 시작된 만큼, 누구나 최종 합의에 따라 콤팩트를 개발할 것으로 받아들였다”며 “개발을 거의 마친 차량(9BUX)을 두고 당시 협상을 진행했다는 한국지엠 설명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논란은 합의서에 적힌 영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로 좁혀진다. 한국지엠 쪽은 지엠과 산은 간 합의서에 쓰인 표현은 ‘나인비 플랫폼에 기반한 C급 에스유브이’(C SUV based on 9B platform)라고 공개하며, “나인비유엑스가 바로 합의서에 적힌 나인비 플랫폼으로 만든 시세그먼트 에스유브이”라고 주장했다. 산은도 ‘나인비유엑스 차량이 지난해 12월 약속된 개발 물량이 맞다”고 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온 세상을 들썩이게 몇달에 걸쳐 협상을 하더니, 석달이 지나서야 한국지엠과 산은 둘 다 콤팩트 에스유브이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산은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협상을 했던 것인가”라고 말했다.
최하얀 정세라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