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지산업 선구자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이 지난 27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5.
고인은 1967년 유한양행 제지기술 부장으로 입사해 70년 유한킴벌리 창립을 주도했다. 71년 미용티슈 ‘크리넥스’, 74년 ‘뽀삐 화장지’ 등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화장지를 비롯해 여성용 생리대, 기저귀를 첫 개발해 국내 생활문화를 선도했다. 70년대에는 제지 플랜트를 국내에서 처음 직접 설계해 모기업인 미국 킴벌리크라크사를 비롯해 남미와 유럽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84년에는 국·공유지에 나무를 심는 캠페인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도입해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유한킴벌리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95년부터 회장을 지냈고 2004년까지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으로 업계를 대표했다.
그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는 97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제지업계에서 먼저 인정받으며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종이 산업이 집중돼 있는 미국 위스콘신주 인스티튜드 오브 테크놀로지에 있는 ‘세계 제지산업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헌정된 것이다. ‘제지의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명예의 전당에는 당시 35명만 올랐고, 이 전 회장은 최연소 인물이었다.
1997년 ‘제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고 이종대(맨가운데) 회장. 딸인 요리연구가 이혜정씨와 한 티브이 방송에 출연해 소개한 사진이다.
2000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남다른 생활철학을 소개하기도 했다. “1932년 경북 금릉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흔네살 때 늦둥이를 낳은 어머니가 2살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로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이규하)로부터 근면함을 배웠다. 54년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났다.”
그는 이런 근면한 덕분에 대구사범 물리학과 4학년 초인 54년 학장의 추천으로 청구제지 견습공으로 들어가 ‘47년 종이인생’을 시작했다. 이듬해 졸업한 뒤 23살 공장장이 된 그는 넝마주이들이 주워온 휴지를 재생한 ‘선화지’를 만들었다. 55년 아내 김경애씨와 결혼한 뒤 공장 옆 사택에 신혼살림을 차린 그는 “93년까지 휴일이나 휴가를 모르고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57년 국비유학생으로 뽑힌 그는 이탈리아의 카르테라 부르고(Cartera Burgo) 제지회사에서 정식으로 화장지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8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온 그는 58년 서울 광장동의 대한제지에 생산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뒤 정부에서 설립한 한국볏짚펄프주식회사 기술담당자로 스카웃됐으나 3년만에 펄프사업이 백지화되자 군산의 풍국제지 공장장으로 옮긴 그는 63년 한국 최초로 ‘주름잡힌 화장지’인 ‘무궁화’ '장미' 등을 생산해냈다. 66년 안양의 이화제지 공장장 시절 세계적인 위생제지업체인 킴벌리크라크사와 인연을 맺는다. “한국에 합작회사를 내기 위해 시장조사를 나온 킴벌리크라크사의 직원이 몇해 전 네델란드 공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제 명함(J. D. Lee)를 들고와 찾았던 거예요.”
그뒤 3년동안의 합작 준비작업을 거쳐 70년 40명의 직원으로 안양에서 유한킴벌리가 창립됐고, 그는 상무이사 겸 공장장으로 취임했다. 80년 제2공장은 그의 고향인 김천에 건설되었다. 75년에는 우리나라 화장지 원단 제조 기계 1호를 만들어냈다. 유한킴벌리가 미국킴벌리크라크사의 자회사에 플랜트 수출을 하게 되자, 다윈 스미스 회장이 그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신을 알게 되고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당신은 1억명 중에 하나 있을만 한 사람입니다. 유한킴벌리를 세워주고 함께 일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는 회장 재임시절 한국 제지산업을 세계 9위의 선진국으로 성장시킨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기도 했다.
지난 2010년 티브이에 함께 출연한 이종대·김경애 회장 부부와 딸 이혜정·고민환 교수 부부.
이 전 회장은 최근 몇년 사이 딸인 요리연구가 이혜정씨와
사위 고민환(대한여성성의학회 회장·을지대 의대 교수)씨 부부와 방송 등에 종종 출연해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씨는 2010년 한 방송에서 “결혼식 신부 입장을 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 참지 말고 견뎌보자’, ‘참는 건 억울하지만 견디는 건 보람’이라고 하셨는데, 그때의 말씀을 떠올리며 고된 시집살이를 견녀냈다”라며 “아버지처럼 세상을 향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내겐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소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들로는 이석우(사업)·재우(키친스토리 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8시다. (02)3010-2000.
김경애,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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