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상과 관세 관련 소송을 다루는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이 국내 철강 업체들에 부과된 고율 관세를 재산정하라는 명령을 미 상무부에 잇따라 내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철강 업계는 미 상무부가 개정 관세법의 ‘불리한 가용정보’(AFA)를 적용한 법 조항의 남용 문제를 제기해왔는데, 이번 명령으로 미 상무부의 자의적인 관세 부과 조처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12일 철강 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미국 상무부가 현대제철의 냉연강판 제품에 부과하겠다고 한 반덤핑 관세율(34.3%)을 재산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미국 상무부의 판단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앞서 현대제철은 2016년 7월 미국 상무부로부터 고율 관세를 부과받자 같은 해 10월 국제무역법원에 제소했다.
이번 판정으로 미국 상무부는 오는 9월 26일까지 관세율을 다시 계산해 국제무역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재산정 명령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불리한 가용정보 조항이다. 미국은 2015년 6월 외국 기업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쉽게 하려고 ‘무역특혜연장법(TPEA)’을 개정해 이 조항을 마련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외국 기업의 반덤핑 조사 때 자료 제출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기업 자료만으로 관세를 산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조사 비협조’를 내세워 자의적인 관세 부과가 가능하도록 허용한 셈인데, 미국 상무부가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 상무부가 이 조항을 적용해 고율 관세를 물리려다 제지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도 국제무역법원은 현대제철의 냉연도금강판에 부과된 반덤핑 관세율(47.8%)을 재산정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초 반덤핑 관세율을 7.89%로 낮춰 국제무역법원에 제출한 뒤 확정해 공표했다. 포스코도 ‘불리한 가용정보’를 구실로 관세 폭탄을 던지는 미국 상무부에 맞서 2016년과 지난해에 모두 3건의 소송을 국제무역법원에 제기했다. 이 가운데 포스코는 지난 3월 국제무역법원으로부터 냉연강판에 매겨진 59.72%의 상계관세를 재산정하라는 명령을 받아냈다.
국제무역법원이 국내 업체의 손을 모두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통상 분쟁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보다 간편하고 신속한 분쟁 해결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미국 행정부가 세계무역기구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무역법원의 판결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강성천 통상차관보 주재로 관계부처, 업계,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영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강 차관보는 “미·중 무역분쟁이 점차 고조되고 있고 장기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주도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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