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수입산 철강에 추가 관세 카드를 빼들었다. 애초 우려한 것보다 강도는 낮아졌지만 파장이 만만찮다. 트럼프발 통상 압력이 전방위로 번지면서 캐나다나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확산에 큰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관련 업체들은 “대미 수출을 중단해야 할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자국 철강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한 간담회에서 “철강은 25% 관세, 알루미늄은 1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주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할 계획이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모든 수입 철강 제품에 최소 24% 관세를 부과하거나, 한국과 브라질, 중국 등 12개국 철강에 최소 53% 관세 부과, 모든 국가의 철강 수입 물량을 작년의 63%로 제한하는 쿼터 설정 등 세가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번째 안을 선택해 관세율을 상무부 권고안보다 1%포인트 높은 25%로 정했다. 다만, 미국 노동자 고용이 많은 캐나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할지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수입산 25% 관세 부과’ 방안을 선택한 것은 미국 내 철강 수입 업계가 규제안 자체를 반대하는 동시에 ‘특정 12개국 관세 부과안’에 더 강하게 반발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 내 수입업계를 중심으로 6개 경제단체가 최근 백악관에 공개서한을 보내 ‘철강 수요 산업이 일으키는 미국 내 고용 및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막대하며, 2002년 미국의 외국산 철강 세이프가드 조처 때도 오히려 미국 일자리 20만개가 사라지는 나쁜 효과를 가져왔다’고 공식적으로 반발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12개국에만 초고율 관세(53%)를 부과하면 미국 내 철강(원료·중간재) 조달가격이 추가 관세만큼 올라 철강을 쓰는 각종 최종제품 판매가격도 연쇄적으로 상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오히려 여러 미국 제품의 소비와 판매가 부진할 가능성이 있어 좀더 낮은 관세율(25%)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17일 서울 한국기술센터 대회의실에서 백운규 산업부 장관, 권오준 포스코 회장,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 임동규 동국제강 부사장, 이휘령 세아세강 부회장, 김창수 동부제철 사장, 박창희 고려제강 사장, 김영수 휴스틸 부사장,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 등 주요 철강업체·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상무부 232조 발표 대응 민관 합동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산업부 제공
한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률적 관세 부과는 모든 국가를 상대로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월 발표한 수입 세탁기·태양광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은 한국과 중국이 주요 타깃이었지만, 이번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는 모든 나라가 대상이 됐다. 이에 맞서 중국은 물론 유럽연합이나 캐나다도 유감 표시와 함께 보복 관세 등을 예고했다. 여기에 4월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가 ‘스페셜 301조’를 근거로 주요 교역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정책과 침해 수준을 평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통상 전쟁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아직 최종 결정이 나지 않은 만큼 이번 규제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이날 백운규 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연 뒤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채택되도록 대미 아웃리치(이해관계자 설득 노력)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5일부터 워싱턴에 머물며 ‘철강 아웃리치’를 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귀국 일정을 2일에서 9일로 바꿨다. 현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최종 서명할 때까지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 등과 접촉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뛰겠다는 것이다.
철강업계는 “최악은 피했다”면서도 “대미 수출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이번 조처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용 강관 업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원유와 셰일가스 채취에 사용하는 유정용 강관의 대부분 물량이 미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액은 32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유정용 강관과 송유관용 강관 등 에너지 강관 품목이 53%를 차지한다. 김경래 휴스틸 이사는 “기존 유정용 강관에 20%의 관세를 부과받고 있는 상황을 감수하고 어렵게 수출해왔는데 추가로 25%를 맞으면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넥스틸과 세아제강 등 다른 강관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또 포스코나 현대제철 역시 피해가 불가피하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냉간압연강판 66.04%, 열연강판 62.57%의 관세를 내고 있어 25%를 더하면 관세가 각각 91.04%, 87.57%로 치솟게 된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이미 높은 관세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25% 관세를 물린다면 버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홍대선 조계완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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