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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기업 ‘성범죄 해결’, 시스템 마련만이 능사 아니다

등록 2017-11-08 17:57수정 2017-11-08 21:33

Weconomy | 위미노믹스
적절한 절차 따랐다며 피해자의 주장에 선긋기
담당자 젠더 의식 높지 않으면 소용 없어
여성 관리자가 관련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그래픽-장은영
그래픽-장은영
한샘과 현대카드의 직장 내 성범죄 발생 공론화 뒤 일터에서의 여성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업이 ‘여성 친화’를 내세우지만 정작 성범죄 발생 뒤 작동하는 기업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여성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의 직장 내 성범죄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는 여성 임원을 비롯한 관리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현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직장 내 성범죄 공론화 뒤 여성들이 함께 분노한 지점은 한샘은 ‘여성 친화’ 기업, 현대카드는 ‘성별 다양성 존중’ 기업으로 스스로를 알려왔다는 데 있다. 한샘은 직장 자녀를 둔 여성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모성보호에 앞장서는 기업인 점을 강조해 왔다. 현대카드는 최근 본사에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별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양성평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성별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는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이 지난 3일 직접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한샘과 현대카드는 여성 친화와 성별 다양성 존중을 내세워왔지만 실제 사내 성범죄가 발생한 뒤 취한 대응 조처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두 회사는 모두 기업이 마련한 적절한 절차를 따랐다고 강조하면서 피해자의 주장에는 선긋기를 하고 있다. 두 기업이 주장한 대로 문제 발생 뒤 ‘시스템’을 가동한 것은 맞다. 그러나 “시스템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 여성학자인 권김현영씨는 “시스템을 갖췄어도 이런 문제가 나왔다는 것은 그것을 운영하는 개별 담당자들의 젠더 의식 수준이 높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직장 내 성범죄의 실질적 예방을 위해서는 권력 관계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가해를 했을 경우 더 엄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 게 상식이 되고, 성범죄 발생 뒤 작동하는 시스템의 담당자 성별과 젠더 감수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말뿐이 아닌 여성 친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 구성원의 ‘성별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대기업의 한 여성 임원은 “여성 친화 기업을 강조하지만 성범죄 예방 등 여성 직원의 안전 또는 생존권과는 무관한 캠페인을 벌이곤 한다”며 “이는 여성 친화적 경영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결국 그것을 실행하는 예산과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여성 관리자는 거의 없고 남성 관리자 위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2일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성 격차 지수를 보면, 조사 대상 144개 나라 중 한국은 118위에 머물렀다. 지난해보다 2계단 하락했다. 이 가운데 경제적 참여·기회 부문의 순위는 121위였다. 일본도 114위로 낮지만 여성 임직원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여성 활약 추진법’을 시행해 직원 300명 이상의 민간기업은 여성 채용 비율, 관리직 중 여성 비율을 공표하도록 했다. 권박미숙 한국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도 “많은 여성들이 한샘 사건 등에 분노하면서 성별 임금격차와 여성 임직원 비율이 낮은 문제를 함께 거론했다”며 “여성이 같은 동료로 인정받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직장 내 성범죄 문제는 앞으로도 사소한 문제로 취급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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