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격 사퇴 선언으로 삼성 그룹에 대대적인 인사·조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와 조직 개편에서는 구속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철학과 색채가 전폭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은 1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모습. 연합뉴스.
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를 다시 만드는 것을 놓고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 계열사를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을 전격적으로 없앤 뒤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강조했지만, 경영진 인사와 전략 수립 등을 위한 ‘장막 뒤 실세 조직’의 부활론이 슬금슬금 대두하고 있다.
16일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새 그룹 컨트롤타워 신설을 구상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경영전략을 세우고 계열사 간 업무 조정을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 쪽은 그동안 ‘컨트롤타워’ 부활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웠다. 옛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을 없앴다가 이름만 다른 조직을 만든다면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재판받는 상황에서 국회 청문회에서 한 약속을 뒤집기도 어렵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미 그룹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삼성 내부적으로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거론한다. 삼성 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이 없어지고 계열사들을 들여다보는 곳이 없다. 계열사 경영진들이 (스스로) 내년 계획을 짤 때 다음 평가를 좋게 받으려고 목표를 낮출 가능성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과거 미래전략실은 계열사 경영 진단은 물론 임원 평가까지 주도적으로 챙겼다. 더욱이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가 지난해 실시되지 않아, 성과 평가 없이 4∼5년 넘게 연임한 전문경영인이 늘고 있어 ‘세대교체’ 필요성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옛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옛 미래전략실 전략1팀 소속의 김용관 부사장과 권영노 부사장이 지난주 안식년을 마치고 각각 삼성전자, 삼성에스디아이(SDI)로 복귀했다.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팀장(사장)의 복귀설도 흘러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옛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남아있다면 어디에선가 (비슷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컨트롤타워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봤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전실 같은 장막 뒤 조직이 아닌 계열사 경영진이 참여하는 책임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판단을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선임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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