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6일 엘지씨엔에스(LG CNS) 직원 290여명이 ‘근무지 이탈’을 경고하는 메일을 받았다. 무더기 경고는 직원들이 휴가를 신청해 승인받았지만, 회사가 ‘롤백’(전산 데이터를 되돌림)으로 휴가 승인을 승인 요청 상태로 만든 탓이었다. 이후 무단결근 처리된 36명은 징계를 경고한 메일까지 받았다고 엘지씨엔에스 금융자동화사업부 노조는 8일 밝혔다.
대규모 징계가 경고된 것은 엘지씨엔에스가 자동금융거래단말기(CD·ATM)를 만드는 금융자동화사업부문 매각에 나서서다. 엘지씨엔에스는 지난달 이 사업부를 중소업체 에이텍에 420억원에 넘기는 매각 계약을 맺었다. 회사 쪽은 “4년간 적자가 누적되고, 정보통신(IT)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고자 매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평택의 금융자동화사업부 직원들은 이날 휴가를 내고 서울 여의도 본사 앞에서 매각 반대 집회를 했다. 한 직원은 “회사가 집회를 막으려 데이터까지 고쳐 휴가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회사 쪽은 “휴가를 부결한 것은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법에 보장된 시기 조정권을 요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동금융거래단말기의 국내 시장은 엘지씨엔에스와 노틸러스효성, 청호컴넷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핀테크와 모바일 등 디지털 금융 활성화로 은행 지점은 통폐합되고 단말기 수요는 줄었다. 2011년 5만6102대(시중·지방·특수은행 기준)였던 기기는 지난해 4만8474대로 줄었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비현금거래 확대, 영업점 통폐합으로 단말기 설치 대수는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체들은 줄어든 수요에 단말기 단가마저 낮아져 국내에서 적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엘지씨엔에스 직원들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영진을 탓했다. 정우영 금융자동화사업부 노조위원장은 “국외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인력 등 투자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노틸러스효성 등 경쟁업체는 국외 사업으로 국내 적자를 메우고 있다.
직원들은 매일 출근길에 항의집회 중이다. 정 위원장은 “경영진이 저가 수주를 한 탓에 매각 뒤 새 경영진이 ‘경영상의 이유’를 핑계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고용보장에 대한 확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명절 때 직원들 대부분이 가족에게 회사가 매각될 것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착잡해했다. 연휴 전날 고용안정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두고 노사 간 교섭은 결렬됐다.
반면 회사 쪽은 “노조가 거액의 위로금을 받으려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며 “매각 협상 과정에서 3년 고용보장을 받기 위해 많은 양보를 했고, 노조와 상식적인 테두리 안에서 계속 협의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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