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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삼성 비자금’ 폭로 김용철 “삼성이 하나도 안 바뀌고 변화할 기미도 없는데…”

등록 2017-09-11 11:01수정 2017-09-12 11:37

“할 얘기 없다”며 인터뷰 끝내 사양
“삼성 말고 지금 일에 최선 쏟고파”
7년째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 맡아
“광주 교육계 깨끗해졌다” 평 듣기도

삼성 비자금의 내막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가 2008년 2월27일 오후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차를 운전해 도착하고 있다. 왼쪽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영식 신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삼성 비자금의 내막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가 2008년 2월27일 오후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차를 운전해 도착하고 있다. 왼쪽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영식 신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삼성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바뀌고, 변화할 기미도 전혀 없는데 내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삼성과 관련해서는 내 역할은 10년 전에 끝났다.”

10년 전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처음 세상에 알린 김용철(59) 전 삼성 법무팀장(현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 이하 호칭 생략)은 전화 통화에서 “삼성과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더 없다”며 찾아오지도 말라고 말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앉으면 혹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안고 지난달 28일 광주로 무작정 찾아갔으나,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김용철은 2010년 12월 광주교육청의 개방형 감사담당관에 공개 경쟁을 통해 채용됐다. 그는 “교육감(장희국)과 아무런 인연이나 안면이 없었다. 직업 없이 놀고 있을 때 광주에 있는 친구들이 개방형 감사담당관 자리에 응모해보라고 권했다. 고향에 가서 일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 싶어 내려왔다”며, 짧게 근황을 설명했다. 전설적인 특수부 검사였던 그가 감사 책임자가 된 뒤 광주 교육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그는 학교 건축이나 각종 공사와 관련한 입찰 비리, 촌지 수수 등의 낡은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맡은 일마다 일벌백계로 다뤘다. 광주교육청의 한 출입기자는 8일 “김 감사담당관이 취임 직후부터 엄한 잣대를 들이대자 초기에는 일선의 반발도 있었지만, 차츰 적응해 지금은 광주의 교육계만큼은 아주 투명하고 깨끗해졌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 2007년 10월30일치 1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 2007년 10월30일치 1면.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김용철은 1989년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에서 줄곧 특수부 검사로 일했다. 검사는 정의감 강한 그에게 딱 맞았다. 음주 사고를 내고 도망간 친동생과 만취 상태에서 사람을 폭행한 처남을 구속하도록 한 일은 법조계에서 유명하다. 그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친가와 처가 형제들과 의절해야 했다.

김용철은 1995년에 시작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 때 검찰의 전설을 하나 만들었다. 1996년 전두환 비자금을 파던 중 김석원(쌍용그룹 회장) 자택에 숨겨져 있던 전두환의 돈 61억원을 찾아냈다. 부담을 느낀 정권과 검찰 고위간부들이 수사 중단을 요구했지만, 그는 김석원 자택을 뒤져 사과상자에 담긴 현금을 압수했다. 이 일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자, 그는 검찰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옷을 벗었다.

“기업에 들어가서 법조인 역할이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합리적 경영기법을 갖춘 일류 기업에서,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삼성을 생각한다> 121쪽) 그는 변호사 말고 인사팀에서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1997년 8월 삼성에 입사했지만, 삼성은 그를 처음부터 법무실에 배치했다. “그때부터 검찰 선후배나 동기들에게 뇌물성 현금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종종 받았다. 나는 이런 지시를 때로 이행했고, 때로 거부했다.”(<삼성을 생각한다> 125쪽) 삼성 조직과 불화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2004년 7월 스스로 삼성 임원(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그만둔 최초의 사람이 됐다.

<한겨레21> 683호 표지
<한겨레21> 683호 표지
삼성은 김용철이 2007년 5월 <한겨레>에 쓴 칼럼 등을 이유로 법무법인 ‘서정’에 압력을 넣어 변호사 김용철을 내쫓도록 압박했다. 김용철이 2007년 10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 삼성 비자금과 자신이 삼성에서 저질렀던 불법 행위들을 양심고백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파장은 엄청났다. 삼성 비자금 특검(조준웅)이 구성돼, 삼성이 숨겨놓은 돈 4조5천억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특검은 이 돈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차명재산이라며 삼성에 돌려주고, 이건희는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조준웅의 아들은 이후 특채로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건희는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아,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불법 경영권 세습 꼬리표를 거의 ‘말끔히’ 털어냈다. 넉달 뒤 대통령 이명박은 이건희 1인에 대해 특별사면했다.

역사의 중심에 선 개인은 그것이 비록 영광스럽더라도 힘들다. 김용철 역시 양심고백 이후 “정의의 사도”라는 찬사와 박수 못지않게 “배신자”라는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삼성은 나에게는 과거다. 지금은 현재의 내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면 지난겨울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우리 사회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 그가 던진 짧은 이야기다. 김용철의 미래를 조용히 지켜보는 게 그에게 빚진 사람들의 몫이리라는 생각에 그와 기쁘게 헤어졌다.

광주/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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