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노조와 고리 핵발전소 인근 일부 지역주민 등이 3일 울산에 있는 한수원 새울본부 옆 공터에서 집회를 열고 ‘대책 없는 탈원전 정책 즉각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이 최근 정부를 만나 ‘액화천연가스(LNG)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한수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 노조는 그간 한국 원전 산업의 높은 기술력과 경제성·안전성 등을 강조하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한수원 노조가 원자력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참여에 대한 고민을 밝힌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온 한수원 노동자들이 ‘자구책’을 마련코자 부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노조 쪽 설명을 종합하면, 한수원 노조 김병기 위원장 등 5인은 지난 6일 오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서울에서 만났다. 노조는 면담 다음날 낸 투쟁소식지에서 백 장관에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즉각 폐지 △천지 원전 부지에 액화천연가스 사업 등 부지 환용 △마피아로 내몰린 원전 종사자 사기 진작 대책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백 장관은 공론화위는 국무총리실이 주관하는 것으로 그 결과를 지켜보자는 설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탈원전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자 시대적 요구이니 한수원 노조가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눈에 띄는 점은 노조가 현재는 에스케이(SK), 지에스(GS), 포스코 등 민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 발전산업에 한수원 차원의 참여 의지를 밝힌 점이다. 노조가 투쟁소식지에서 언급한 ‘천지 원전 부지’는 경북 영덕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영덕에 신규 원전인 천지 1·2호기를 2026∼2027년께 완공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한수원이 지난달 천지 1·2호기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중단하며 건립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했다.
면담 자리에 함께한 산업통상자원부 쪽 인사도 한수원 노조가 ‘원자력이 아닌 액화천연가스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다만, 천지 부지 활용과 같은 구체적 방안이 논의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노조도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만 있었다고 한다.
한수원 노조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원전 산업이 구조조정 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노조 쪽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로드맵이 현실화하면 2022년 이후부터 5년 안에 원전 9개가 폐로된다”며 “고리 1호기 폐로에 따라 줄어든 정원 규모를 보니, 9개 원전이 폐로된다면 800∼1000명 인력이 구조조정 될 것으로 계산된다”고 말했다.
한수원 노조가 액화천연가스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참여 의지를 물밑에서 밝힌 것은 ‘안팎이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한수원 노조 안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일부 수용하되 현실적인 일자리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는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지금이야말로 한수원 안에서 탈원전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난 3일 <한겨레>를 만나 밝힌 노조의 최남철 한울본부위원장을 상대로도 ’배신자’란 강한 비난이 쏟아졌다.
한편, 한수원 노조 남건호 기획처장은 “정부에 액화천연가스 또는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우리 회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수용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탈원전 정책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반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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