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울 연구개발센터 전경. 삼성전자 제공
‘디자인’ 애플과 겨루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디자인 본산은 복잡하고 화려한 도심이 아닌 조용한 산자락 밑에 있다. 19일 삼성전자 제품 디자인의 디엔에이(DNA)를 찾기위해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 있는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방문했다.
서울 연구개발 캠퍼스는 축구장 9개 규모인 약 5만3000㎡ 땅에 건물 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5년 11월 입주를 시작해 현재 약 5000명이 일하고 있다. 디자인경영센터와 소프트웨어센터, 디엠씨(DMC)연구소 등 미래 사업역량 강화에 핵심 기능들이 모여있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디자인경영센터는 삼성전자의 디자인전략을 수립하고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선행 디자인을 기획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무엇을 개발하는지는 비밀이다. 이돈태 디자인경영센터 부센터장은 “이곳은 보안지역이라 연구 과제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캠퍼스 안에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였다. 대신 이 부센터장은 힌트를 남겼다. “인공지능(AI)과 관련한 새로운 제품, 사물인터넷(IOT)과 관련한 새로운 제품군이나,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과 관련한 사업영역도 만들고 있다. 삼성의 장점은 다양한 사업영역을 한다는 것이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를 넘어서는 제품을 만들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했다.
이돈태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부센터장.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장점은 그동안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우)’였다. 애플을 모방한다거나 혁신적인 제품이 없다는 비판도 따라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실적이 좋지 않을때 이돈태 부센터장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이 부센터장의 역할은 미래에 있다. 그는 “차기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2, 3년이 지나면 그 결과물을 시장에 선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부센터장은 “디자인경영센터는 세계 각 지역 시장마다 요구하는 색깔이나 소비자 행태에 대해 인사이트(통찰력)를 도출해 사업부에 지원한다”고 역할을 덧붙였다. 현재 판매되는 제품은 예를 들어 갤럭시 S8 같은 스마트폰 플래그십 모델은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이 전적으로 개발부터 양산까지 진행한다.
우면 캠퍼스에는 삼성전자 제품을 사용하면 듣게 되는 소리를 연구하는 연구실(사운드랩)과 실제 가정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삼성과 다른 제품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홈익스피리언스랩’도 있다. 3500명이 등록 가능한 피트니스센터와 2400석 규모의 식당, 가정의학과 등 부속의원까지 직원 편의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곳 직원들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기획한 가로 2m의 넓은 ‘삼성형 책상’에서 일한다.
삼성전자 서울 연구개발센터 디자인 라운지. 삼성전자 제공
깨끗하지만 고요한 것도 인상적이다. ‘사용자 경험(UX)을 연구하는’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7000권을 갖춘 도서관에선 앉아 있는 이용자를 찾기 힘들었다. 디자이너들이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계단에서도 왁자지껄한 만남은 보이지 않았다. 벽면에만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문화를 만들자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미국 대표적인 혁신 정보기술(IT)업체인 구글과 에어비앤비에 갔을때 노트북을 가지고 움직이는 직원들 때문에 공간이 복잡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디자인경영센터 관계자는 “밤이 되면 음악을 들으면 일하는 직원도 있고 시끄러워진다. 오늘은 기자들이 오니 다들 자리를 지켜서 좀더 조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삼성의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삼성은 기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면에서 성공했지만, 디자인에 대해선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모든 제품을 평범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삼성이 매년 제품 1000개를 내놓는다면, 그 중 20개만이라도 급진적이고 미친 걸 만들면 어떤가?”
송현주 삼성전자 상무는 이날 삼성 디자인이 평범하다는 지적에 대해 “디자이너마다 추구하는 방향과 철학이 차이가 있다. 생활가전의 경우 일년이 지나도 헌 제품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가치 기준에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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