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조찬 간담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엘지(LG)디스플레이가 협력사와 상생협력을 2·3차 업체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새 정부가 재벌에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2·3차 협력사 지원방안을 챙겨보라고 메시지를 전달한 가운데, 대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지 주목된다.
엘지디스플레이는 17일 기존 1차 협력사 위주의 금융·기술·의료복지 분야 상생프로그램을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내용을 보면, 1차 협력사 지원을 위한 400억원 규모의 상생기술협력자금을 1000억원으로 늘려 2·3차 협력사에도 금융 지원을 한다. 2·3차 업체가 설비투자·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자금이 필요한 경우 엘지디스플레이에 직접 신청하면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 엘지디스플레이는 5105건의 특허를 2·3차 협력사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개하고 유·무상 양도한다고 밝혔다. 의료복지 지원도 폭을 훨씬 넓혔다. 암이나 희귀질환 등 포괄적 상관성에 기반을 둔 질병이 발병했을 경우, 엘지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2·3차 협력사 직원에게도 자사 임직원과 차별 없이 의료복지를 지원하기로 했다. 엘지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상생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껴왔는데, 새 정부 기조도 협력사 지원을 강조해 시기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엘지디스플레이의 상생협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3일 4대 그룹 전문경영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정부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1차 협력사는 개선됐지만 아직 크게 미흡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기업 간) 거래조건과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하다”며 “상위 그룹이 자발적으로 2차·3차 협력업체에 도움이 될 수 있거나 노동자의 근로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재벌들은 새 정부의 메시지를 읽는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우리도 2·3차 협력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임을 안다”며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쪽은 “특별히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대신 6월부터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 물품대금으로 어음 대신 전액 현금으로 30일 이내에 지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지난 16일에는 일부가 아닌 모든 반도체 협력사에 상반기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런 협력사 지원 방식이 소득 불균형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수출 대기업은 국외에서도 납품을 받아 납품단가 현실화의 기준을 가늠하기 어려워, 우선 간접적으로 협력사를 지원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협력사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스스로 임금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