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정문 앞에서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삼성이 2월말 이재용 부회장 기소 직후 5개항의 경영 쇄신안을 발표한지 한달째를 맞은 가운데,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승마협회장) 사임은 이행된 반면 계열사 자율경영과 대관업무 조직 해체는 아직 이행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외부 출연·기부금의 이사회 승인은 삼성전자가 시행 방침을 밝히는 등 계열사별로 추진 중이지만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에 그치는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낮아, 경영 쇄신안 이행 중간점수는 50~60점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삼성 계열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물산·생명을 포함한 16개 상장 계열사들은 지난 24일 일제히 주총을 열었는데 안건에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감사위원) 선임 등만 포함됐고, 자율경영 강화 관련 안건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들은 주총에 앞서 열린 이사회에서도 관련 논의 사항이나 의결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에스케이(SK)그룹의 경우 2003년 에스케이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자 구조본 해체와 계열사 이사회 중심 경영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하고, 2004년 3월 주총에서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한 것과 대비된다. 경제개혁연대 이수정 연구원은 “삼성이 계열사 자율경영을 하려면 주총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의결을 통해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회사의 대표 선출을 위한 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 신설, 등기이사 보수 규정과 같은 내부 시스템 구축이 핵심”이라며 “이번 주총 때 관련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내년 주총까지 최소 1년간은 계열사 자율경영과 관련한 실질적 진전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미전실 출신의 한 임원은 이에 대해 “계열사 자율경영은 미전실 해체가 급하게 진행돼 준비가 제대로 안 된 게 맞다”면서 “앞으로 이행해갈 것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또 삼성은 미전실 기획팀과 계열사에 대관조직을 별도로 두었는데, 경영쇄신안 발표 이후 미전실 기획팀은 해체됐지만 계열사 대관조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규제당국들과 채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관조직이 필요하다”며 “미전실 대관조직 해체 이후 삼성전자 대관조직이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삼성생명도 “금융위나 금감원이 자료 제출이나 검토를 요청하기 때문에 카운터파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관업무 조직 해체가 미전실에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미전실 7개 팀을 모두 해체하면서 굳이 대관업무를 따로 언급한 것은 계열사 대관조직도 포함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일정 기준 이상 외부 출연·기부금의 이사회 또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 승인 및 집행은 삼성전자가 이미 실행 방침을 밝혔고, 다른 계열사들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처럼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이사회 검토 과정에서 걸러내려면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필수적인데, 삼성 계열사의 사외이사들은 상당수가 거수기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24일 주총을 개최한 삼성물산·에스디에스(SDS)·전기·화재·증권·생명·호텔신라 등 7개 계열사의 사외이사(또는 감사위원) 후보 34명 중에서 절반인 17명에 대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출연 용인, 이해상충으로 인한 독립성 저해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를 냈다. 경제개혁연대 이 연구원은 “삼성 경영 쇄신안 5개항 중에서 완전한 이행은 미전실 해체와 박상진 사장 사임 2건이고, 외부 출연·기부금의 이사회 승인은 이행 과정에 있기 때문에 중간평가 점수는 50~60점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안팎에선 2008년 특검 직후 발표한 경영 쇄신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당시 삼성은 이건희 회장 퇴진만 이행하고, 전략기획실(현 미전실)은 해체 선언 뒤에도 간판만 내린 채 계속 활동했다. 퇴진을 발표한 이학수 부회장도 계속 전략기획실 책임자로 일했다. 또 1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차명계좌의 사회환원, 삼성과 직무 관련성이 있는 금융 계열사의 사외이사 교체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올해 주총에서도 삼성화재의 박대동 사외이사(율촌 고문), 삼성증권의 김경수 사외이사(성균관대 교수), 삼성생명의 윤용로(세종 고문)·허경욱 감사위원(태평양 고문)은 직무 관련성 때문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반대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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