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지난해 12월 소방점검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공사를 중단시킨 ‘롯데월드 선양’ 조감도.
롯데그룹은 27일 롯데상사 이사회가 성주골프장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부지로 제공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지만 이런 사실을 스스로 발표하지 않고 따로 입장을 내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정부 의사에 따른 결정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주요 사업 상대국인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뇌가 묻어나는 행보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모든 과정은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설명할 내용이 따로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런 말에서는 마지못해 내린 결정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묻어났다. 그만큼 롯데 내부에서는 사드 부지 제공 이후의 후폭풍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은 현지 롯데 전 계열사에 대한 기습적 세무조사 및 위생·소방 점검을 벌이고 ‘롯데월드 선양’ 공사를 중단시키는 등 압박성 조처를 취해왔다. 최근에는 대중매체인 <환구시보>가 “롯데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중국을 떠나야 한다”며 사실상 협박까지 하고 나섰다. 유통과 놀이공원, 식품까지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은 롯데의 사업 특성상 중국 민·관이 불매운동에 나서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롯데는 1994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유통, 화학, 관광 등 24개 계열사가 중국에 진출했다. 임직원 2만여명이 연 3조2천억원의 매출을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진출 규모가 가장 큰 유통의 경우 롯데마트 99개를 비롯해 백화점 5개, 슈퍼 16개를 운영중이다. 수익성이 좋지 않은데도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를 계속해 왔다. 특히 3조원을 들여 짓는 롯데월드 선양은 백화점·호텔·아파트·놀이공원을 결합한 대규모 복합타운 프로젝트다. 롯데는 청두에도 대형 복합단지를 조성중이어서 중국 쪽 동향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국내 사업에도 악영향이 가해질 수 있다. 이미 백화점 매출을 앞지른 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본점 매출 3조1600억원 중 80%가 넘는 2조6000억원어치를 중국 관광객이 사줬다. 지난해 11월 성주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결정된 뒤 중국의 명절 성수기마다 운항되던 한국행 전세기가 모두 취소됐다. 중국 정부의 해외여행 정책의 영향을 덜 받는 싼커(개인 여행자)가 늘고 있지만 면세점 매출에서 유커(단체 여행객)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한편 이날 이사회가 열린 서울 대치동 롯데상사 사옥을 항의방문한 원불교 ‘성주 성지 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3층 로비에서 6시간 동안 건물관리 용역업체와 경찰에게 감금됐다가 이사회가 끝난 뒤에야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이사진 면담을 요청했으나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감금돼 식사도 못 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롯데 쪽은 “엘리베이터를 막은 것은 비대위 쪽”이라고 주장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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