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과 관련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화물사업 분리 매각’ 여부를 매듭짓지 못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1월2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지만, 이사들 간에 견해차가 크다는 점에서 결론에 닿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은 “30일 이사회를 열어, 현재 진행 중인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에 대해 검토했으나, 해당 사안에 대한 표결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31일 공시했다.

앞서 유럽연합 집행위는 지난 5월 아시아나항공과 기업결합을 추진 중인 대한항공에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주요 여객·화물 노선에서 독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정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대한항공은 독점 우려를 해소할 방안으로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분리 매각 등을 담은 시정조치안을 마련했는데, 이사회가 이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날 이사회에서 매각에 찬성하는 쪽은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하루빨리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대하는 쪽은 ‘알짜’인 화물사업을 포기하면 합병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고, 회사와 주주 가치를 떨어뜨려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팽팽히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사외이사의 적격성 논란도 안건 의결까지 이어지지 못한 원인으로 파악된다. 사외이사인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의결권을 두고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김앤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해 대한항공 쪽에 법률 자문을 해왔다는 점을 들어 일부 사외이사가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 정관에는 ‘이사회 결의에 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윤 사외이사 임명 전은 물론, 이번 사안(화물사업부 매각) 처리와 관련해서도 법률 자문을 통해 그의 의결권에 이해상충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이런 논란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안팎의 반발도 이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합병 반대 서명을 벌여왔고, 아시아나항공 일부 전임 사장들도 ‘화물사업 분리 매각안 부결’을 요청하는 글을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 내부의 이상 징후는 전날 오전 일찌감치 감지됐다. 사내이사 한명이 이사회 회의를 앞두고 사임하면서다. 아시아나항공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고 밝혔지만, 이사회 직전 전격적으로 사임했다는 점에서 그가 이사회 결정을 둘러싼 압박감에 사임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11월2일 재개될 예정이다. 이에 대한항공 쪽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애초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가 요구한 시정조치안을 제출 마감 시한인 11월1일까지 보낼 계획이었다. 대한항공은 “집행위에 일정 연기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