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독일에 이어 폴란드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텔 본사 전경. 인텔 누리집 갈무리
글로벌 반도체 업계 1위 재탈환을 노리는 인텔이 유럽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독일에 이어 폴란드에 반도체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텔의 유럽 내 반도체 가치사슬 구축 계획이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경쟁사 삼성전자는 유럽이 아닌 한국과 미국에 생산시설을 집중하는 가운데, 양사 간 생산시설 구축 전략이 어떤 시장점유율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인텔은 뉴스룸을 통해, 46억달러(5조9천억원)를 들여 폴란드 브로츠와프 지역에 반도체 패키징(칩을 사양별로 조립하는 공정)과 검사를 하는 후가공 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17일(현지시각) 밝혔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에 들어갈 폴란드 공장을 통해 2천개의 내부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인텔은 내다봤다.
이로써 인텔은 아일랜드에서 독일을 거쳐 폴란드로 이어지는 반도체 가치사슬을 구축하게 됐다. 아일랜드 레이슬립(2024년 가동 예정)과 독일 마그데부르크(2027년 가동 목표)에 건설되는 첨단 반도체 생산 공장과 폴란드 브로츠와프(2027년 가동 목표)에 지어질 패키징 공장 등이 핵심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 주요 지역엔 반도체 연구소 설립을 검토 중이다.
앞서 인텔은 올해 초 유럽에 향후 10년간 최대 800억유로(112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패키징 등을 아우르는 가치사슬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인텔 제공
인텔은 아시아 기업들과의 반도체 생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해답을 유럽에서 찾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베엠베(BMW), 밀레, 지멘스 등 차량·가전용 반도체 칩을 소비할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과거 반도체를 생산했던 설비나 인력 등이 있어 투자 가치가 높다고 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1년 매출액 기준 인텔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2.2%로 삼성전자(12.3%)에 업계 1위를 넘겨준 것도 유럽 투자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 됐다. 자사 브랜드 반도체가 아닌 고객사 제품을 주문자생산방식으로 만드는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를 포함하면, 인텔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 순위는 3위로 밀린다.
유럽연합도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인텔 공장 유치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9% 수준인 유럽 생산 반도체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로 ‘반도체법’(Chips Act)을 발의했다. 독일 정부는 당초 인텔과 마그데부르크 공장 건립 비용의 40%(68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뒤, 100억유로로 지원금을 늘려달라는 인텔의 수정 요구까지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아직 유럽에는 공장 설립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미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공장 용지와 인건비 등이 비싼 유럽에 공장을 유인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공장을 운영 중인 중국과 미국은 칩을 소비할 대기업과 생산시설이 많은 반면 유럽은 시장이 작은 편이다. 국가·지역별 반도체 통상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정치 변수가 예측 가능한 한국에 생산 설비를 집중시키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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