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투자로 2042년까지 총 300조원을 들여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15일 정부가 밝혔다. 정부는 기업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의 계획이다. 또 기업들이 6대 첨단산업에 총 550조원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삼성전자 분을 빼면 사실상 지난해 5월 밝힌 대규모 투자계획의 반복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허가 기간을 줄이는 등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을 지원하고 시설투자 공제율도 상향할 계획이다. 정부 지원이 사실상 삼성전자에 집중되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는 이날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어,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과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조성하는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은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의 하나다. 이를 위해 2042년까지 300조원(연평균 15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fab) 5개 등 생산시설을 경기도 용인 남사면에 조성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경기 용인 일대 710만㎡을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했다.
삼성전자 쪽에서는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이 주도한 기흥캠퍼스와 고 이건희 회장의 평택·화성캠퍼스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작품’으로 내세울 새 생산단지가 조성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 계획에 대해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후 선대 회장에 비견할 만한 업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는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새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기흥·화성·평택·이천 등 반도체 생산단지와 인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등을 연계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될 수 있다”며 “300조원이 투자되면, 직간접 생산유발 700조원, 고용유발 160만명이 생길 전망”이라고 밝혔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에스(DS)부문장(사장)은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해 “대한민국 미래 첨단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글로벌 전진기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반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인력 및 용수·전력 확보를 위해 대단지 조성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순창 건국대 교수(공공인재학)는 “이미 지역의 생태계는 황폐화됐는데 산업적 측면만을 내세워 수도권에 집중 투자하면 지역 균형 발전은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삼성전자는 이날 별도 보도자료를 내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충청·경상·호남 등에 향후 10년간 60조1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투자 분야는 반도체 패키지, 최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첨단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이다.
정부는 또 기업들이 디스플레이(62조원), 이차전지(39조원), 바이오(13조원), 미래차(95조원), 로봇(1조7천억원) 등의 분야에 2026년까지 200조원 이상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선제적 준비, 이차전지 생산용량 확대, 전기차 생산규모 확대 등을 위해서다. 이를 두고 ‘재탕 계획’이란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기업 관계자는 <한겨레>에 “지난해 5월 발표한 투자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지원을 위해서는 양자·인공지능(AI)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에 5년간 25조원을 투입해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공계 우수 인재를 선발해 국외연수를 지원하는 등 혁신인재 양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첨단 기술과 설비를 갖춘 핵심 생산시설은 국내에, 국외 시장 공략을 위한 양산 공장은 국외에 조성하는 ‘마더팩토리’(Mother Factory) 전략도 추진한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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