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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수출규제 해제도 ‘일본 뜻대로’…다음 수순은 지소미아 재개?

등록 2023-03-06 19:15수정 2023-03-07 13:53

정부, 일 수출규제 WTO 제소 중단
일본 쪽 규제해소보다 앞서 결정
“패소위기 일, 정부가 되레 구해줘”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성하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긴급 항의행동을 열어 '반인권∙반헌법∙반역사적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성하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긴급 항의행동을 열어 '반인권∙반헌법∙반역사적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산업통상자원부가 일본의 수출규제가 풀어지기도 전에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일본 기업은 뺀 채 국내 기업들의 출연만으로 조성하는 안을 내비친 데 이어 수출규제 해법마저도 선후가 바뀌며 ‘굴욕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이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개입한 것을 용인한 선례가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정책관은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일 수출규제 현안 기자회견을 열어 “양국 정부는 수출규제에 관한 한-일 간 현안 사항에 대해, 양쪽이 2019년 7월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관련한 양자 협의를 신속히 해나가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한-일 간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곧 개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확정판결하자, 2019년 7월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막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뺐다. 이에 정부는 같은 해 9월 세계무역기구에 일본을 제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가 해소되지 않았는데 먼저 제소를 중단했다. 더욱이 일본의 수출규제 해소 일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피해 회복 조처가 없었는데도 용서하는 모양새란 비판이 나온다. 수출규제 해소가 시급하지 않고, 해소에 따른 이득이 크지 않으며, 재발 방지 대책 역시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는 “일본은 대법원 판결로 인한 경제보복이 아니라고 했는데,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본말이 전도된 백기투항 방식으로 풀어 국민에게 굴욕감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철회가 아닌 잠정 중단으로, 일본이 먼저 철회하면 똑같이 철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 정책관은 “(한-일 간 대화) 날짜는 미리 예단하기 어렵다”며 “빨리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수출규제 시점) 이전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지 않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국내 공급이 안정적으로 됐다”며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100대 품목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많이 감소했다. 수출규제 해소를 통해 기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정부는 불화수소 수입액이 급감하는 등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품목의 수급 차질 없이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입국 다변화와 외국 기업 투자 유치를 많이 해왔다”며 “일본이 다시 수출규제에 나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만 말했다. 정부는 대신 안보 관점을 내세웠다. 강 정책관은 “국제안보 관점에서 공급망이 중요해졌다”며 “한-일 간 경제적, 산업적 협력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제통상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의 안보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해 세계무역기구 패소 위기였는데, 이를 오히려 구해줬다”며 “안보를 빌미로 국제분업을 교란한 일본에 면죄부를 줘 ‘다자주의’라는 우리 경제 전략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을 용인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에 맞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정상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소미아는 현재 ‘종료 통보 효력 정지’라는 불안정한 상태다. 한-일은 이 달 중으로 예상되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수출규제 해제와 지소미아 정상화를 ‘셔틀 외교’ 복원의 결과물로 내놓는다는 구상으로 알려졌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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