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일 오후 서울 중구 한전 서울본부에 설치된 전력수급 현황 모니터. 연합뉴스
2022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 혁신상을 받은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대표적인 에너지 솔루션 기업이다.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에너지 관리·자동화 기술을 사용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대기업이다. 이 회사는 올해 시이에스에서는 가정용 에너지 관리 솔루션 ‘슈나이더 홈’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재생에너지 저장용 배터리와 태양광 인버터, 전기 패널, 전기차 충전기 등이 포함된 제품으로, 낮에 태양광으로 만든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밤에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세금 혜택도 주어진다.
에너지 전환·위기 시대를 맞아 기후변화대응과 수요관리, 전력 효율 높이기 등 에너지 분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해결형 산업’이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에너지 신산업의 특징은 기존 에너지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것이다. 삼성, 엘지(LG) 등 전자제품 제조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제품을 개발·생산하고 전선회사들이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초고압 직류송전(HVDC) 케이블을 개발·생산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젠틀에너지는 지난해부터 2개월 단위로 비행기 부품 제조사와 자동차 부품 제조사, 플라스틱 사출성형 업체 등 공장 3곳의 전력 사용량을 분석한 결과를 5일 <한겨레>에 공개했다. 공장 현장에 존재하는 잔 진동과 열, 빛 등 버려지는 에너지를 수거하고 자가발전으로 센서 전원을 공급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팩토로이드’ 솔루션으로 측정한 결과 새어나가는 에너지가 적지 않았다.
비행기 부품 제조 공장은 조업 시간 중 무심코 켜놓는 대기전력을 절감할 경우 아낄 수 있는 전력이 현재 사용하는 전력의 10~13%나 됐다.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도 작업을 하지 않거나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기기 전원을 끈 상태로 전환하면 전력 사용량의 최소 6%를 절약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사출성형 업체의 경우 공장이 문을 닫은 주말 전력 사용량이 평일과 비슷했다. 2019년 설립한 젠틀에너지는 현재 금속·금형·철강·화학·의료기기·스마트팜 등 28개 기업의 32개 공장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자가발전 센서를 통해 공장 전체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개선 사항을 진단하고 있다.
찰스 기석 송 젠틀에너지 대표는 “산업용 전기요금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점점 더 스마트 팩토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공장 전체적으로 새는 에너지를 확인했다면, 최근에는 기기마다 새는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기술이 개발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국내 철강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의 5%가 버려지는 에너지의 5%를 절감한다면 1㎿ 태양광 발전(460가구 동시 사용량) 530개 발전량으로 생산하는 전력을 아끼는 결과와 같다고 분석했다.
■ 풍력 남는 제주, 전기차 ‘수요반응’ 참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요반응’(DR) 제도의 필요성도 재조명되고 있다. 수요반응 제도는 전력 공급 관리에 대응해 소비자의 전기사용 패턴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한국에서 전력 거래는 전력거래소를 거치도록 돼 있고, 전력거래소와 계약한 기업이 전력거래소의 요구에 따라 전기 사용을 줄이면 정부가 이를 금액으로 보상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수요 반응 제도다. 재생에너지의 경우는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는 등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전력망에서 쉽게 버려지고 있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확대될수록 수요반응 제도를 활용해 전력 공급량과 수요량의 차이를 조율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리드위즈는 제주도에서 버려지는 풍력발전과 국내 보급률 1위의 제주 전기차를 활용해 수요반응 서비스인 ‘스카이블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카이블루 사업에는 총 115㎿ 규모의 충전기기(전기차와 충전기)가 등록돼 있어, 1시간 수요반응 제도에 참여할 경우 일반 가정 1만여 가구의 하루 전력 공급 용량에 이른다.
전력거래소와 그리드위즈에 따르면,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남는 제주에서 발전량이 증가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전력사용량을 늘린 결과 2021년 10월부터 지난달 28일까지 1년4개월 동안 14만3277㎾h의 전력을 전기차 충전 등에 활용할 수 있었다. 4인 가족이 한 달 생활하는 데 통상 350㎾h를 사용한다고 보면, 4인 가족 409가구가 사용할 전력이 버려지지 않고 활용된 것이다.
박라연 그리드위즈 전략기획팀장은 “현재 그리드위즈를 통해 수요반응에 참여하는 총 용량은 115㎿뿐이지만 정부의 전력 운용 정책에 수요반응을 더 많이 활용하거나 이 시장 자체가 커질 경우 그 양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 주민들은 에이치에너지의 ‘알뜰전기요금제 누진컷모햇’ 서비스를 이용하면 매월 고정된 금액만큼의 전기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 200만~1천만원까지 예치금을 투자하는 요금제 상품을 이용하면 매월 1만6천~8만원까지 할인받고 5년 뒤 예치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들은 개인이 모여 만든 ‘시민전력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에서 보내주는 재생에너지를 우선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이치에너지는 지난 1월 말 한전과 ‘소규모 태양광 전력거래 플랫폼 서비스’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북 경주 지역 조합원 신상효(52)씨는 “한달에 전기요금이 5만~6만원 나왔는데 1만원 이상 할인받고 있고 에이치에너지가 관공서 건물 옥상에 운영 중인 태양광 발전시설에 투자해 배당 이익도 얻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전력 공급과 수요를 예측해 다양한 분산전원을 통합 관리할 수도 있다. 태양광·전기차충전기·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여러 분산전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시스템 ‘에너지스크럼’을 개발한 식스티헤르츠는 올해 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에너지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기업은 지난해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약 8만개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도 위에 표시하고 발전량을 확인할 수 있는 ‘햇빛바람지도’를 무료로 공개한 바 있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각종 에너지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자원 빈국’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에너지 솔루션 산업은 꾸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내다본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에너지 전환보다 에너지 효율화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다만 이들 에너지 신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구현해갈 수 있을지 정부와 산업계 전체의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에너지 위기 시대에 합리적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미래지향적 친환경 기술을 실증할 시장이 더 크게 열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그동안 전기요금이 너무 낮았고, 또 도매전력시장이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이라는 공적 기관을 무조건 거쳐야 했기 때문에 전력시장에서 스타트업을 포함한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며 “이들 스타트업 기업들은 기술력은 뛰어나다. 기술 지원보다는 산업 단지에서의 비즈니스 모델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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