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28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 2022년 임시주총 개최를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주주제안은 이야기다. 주주는 대화를 통해 기업의 입장을 파악해야 한다. 기업은 탄소중립 목표와 로드맵, 신흥 기술 도입 시점 등을 공개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외부에서 기업 내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고, 투자자들 역시 시민사회의 기대를 고려해 ‘내러티브’를 만들어가야 한다.”
발레리 콴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 기관투자자 그룹(AIGCC)’ 주주관여 정책 디렉터는 지난달 28일 법무법인 지평과 공동으로 주최한 ‘기후변화 관련 주주관여 동향과 효과적 소통 전략’ 웨비나에서 “ 주주제안을 하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세계 각 나라의 기후 대응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주제안에서도 기후변화 관련 요구가 늘고 있다. 그동안 기후변화 관련 주주제안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았고, 2021년 에이치에스비시(HSBC) 주주총회에선 기후대응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했다. 같은 해 미국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에선 기후 대응에 나서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안간의 주주 64%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다. 또 일본 에너지 기업 제이(J)-파워에서는 탄소배출 감축 전략 강화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환경 법률 단체 ‘클라이언트어스’의 엘리자베스 우 아시아 기후에너지팀 변호사는 “지난해 일본에선 77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290여개 주주제안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기후 관련 제안이 7개였다. 의결된 것은 없지만, 기업의 기후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2020년 3월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열린 ‘포스코 주주총회 대응 기자회견'에서 온실가스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 건설 철회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제안의 권한은 정관 변경과 임원 선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는 기후변화 관련 주주제안이 제기된 적이 없다. 주주제안 문턱이 낮은 미국에선 코스트코·필립스66(PSX) 같은 회사 주주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채택하라거나 탄소중립 이행 계획을 공시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국 공기업 분석회사 이에스지가우지(ESGUAGE)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 정기주총 시즌(1~7월)에만 101건의 기후 관련 주주제안이 있었다. 2020년 50건, 2021년 60건에 견줘 크게 늘었다.
민창욱 지평 컴플라이언스 팀장(변호사)은 “한국은 주주제안으로 정관이 변경되지 않는 한 이에스지(ESG)나 기후 관련 정관 변경이 어렵다”며 “이 달 정기주총 시즌 동안 이에스지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들이 제기되는 기업에서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법 개정안은 어떻게 처리될지 등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법제사법위원회)은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지난해 1월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탄소중립’ 같이 장기적이고 선언적인 목표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과정에 주목하는 주주제안 활동이 더 의미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정부의 2050탄소중립 선언 이후 기업도 장기 목표인 탄소중립 선언은 많이 외쳤지만 정작 2030년까지의 단기 과제를 구체화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세종 기후환경단체 플랜1.5 변호사는 “기업들도 기후대응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기후 문제에 있어서는 초기 대응이 목표 설정보다 중요하다”며 “외부 변수가 많은 입법활동보다 권고적 주주제안이 시민사회나 기업 모두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APG) 아태지역 투자총괄 이사는 “부정적 의미의 투자 철회보다는 긍정적 의미의 주주제안이 더 효과적이다. 거버넌스가 좋은 회사에선 경영진과 이사회가 노력할 수 있다. 투자자나 시민사회가 이를 기다려준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웨비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훈태 포스코홀딩스 이에스지 상무보는 “탄소중립 선언 이후 3년 동안 노력해왔다. 기업도 시민처럼 자발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자는 내용이 정관에도 반영돼 있다. 반기에 한번씩 기후 관련해서 컨퍼런스콜을 하며 소통해왔다”며 “그러나 철강산업 특성 상 유럽과 발전 단계나 과정이 다른 측면이 있고, 탈탄소 전환 속도를 내는 데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연내에는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고, 올해 중 공시에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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