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는 지난 1월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주식 1주당 7천원을 배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3월 진행될 주주총회에서 배당 안건이 확정되면 4월에 배당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2022년 12월 이후 주식을 취득한 주주는 배당금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지금은 시점상으로 배당을 받으려면 배당금액을 알지 못한 상태로 주식을 취득해야 했는데, 내년부터는 배당금액을 확인한 뒤 주식을 취득해도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23일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이 배당금 확인 뒤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포스코홀딩스, 삼성증권 등 8개 코스피 상장사들이 배당금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시했다”고 밝혔다. 아직 공시 전이지만 두산, 포스코 계열 상장사, 국내 금융지주사, 삼성생명 등도 올해 주총에서 정관을 변경해 배당 제도를 개선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연말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확정하고, 그 다음 해 봄에 열리는 주총에서 배당금을 확정해왔다. 그 결과 투자자는 배당금액을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하고, 몇 달 뒤 회사 쪽 배당 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별다른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관행상 재무제표 결산일인 12월 마지막 날 전에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만 의결권과 배당 지급 권리를 부여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한국증시에 대한 저평가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글로벌 펀드 매니저 등 국외 투자자들도 한국 배당주 투자를 ‘깜깜이 투자’라고 평가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배당을 받기 위한 장기투자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매매차익 위주 거래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만들어진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일본을 제외한 미국·프랑스·영국·독일 등은 이미 배당액을 먼저 확정한 뒤 투자할 수 있도록 해두고 있다. 미국 애플은 지난해 9월 주주총회에서 배당액을 결정한 뒤 11월17일 이전까지 주식을 취득한 주주에게 12월8일 배당금을 지급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위가 상장사들이 ‘배당 결정에 대한 권리’와 ‘배당금수령에 대한 권리’를 정하는 시점을 분리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주면서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 등 분기·반기에 한 번씩 배당하는 기업들은 당장 제도 개선에 나서기가 어렵다. 자본시장법에 3·6·9월 마지막 날 기준의 주주에게 배당하도록 명시돼있어서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 내에 분기·반기 배당금액을 결정한 뒤 45일 이내에 이사회를 열어 배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진 것이고, 기업들이 발맞추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국내 주식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는 근본 대책은 아닐지라도 (저평가 해소에) 일부 기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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