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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조선 3사 합심했던 ‘한국형 LNG화물창’ 소송 난타전, 왜?

등록 2023-01-25 07:00수정 2023-01-25 13:19

한국형 LNG화물창 둘러싼 소송전
첫 운항 뒤 ‘콜드스팟’ 발생해 멈춘 선박
삼성중·가스공사·SK해운 소송 4건 진행
“초기에 완벽한 기술 없어…
시행착오 고려 못한 협력 체계 탓"

“초기 기술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실패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걸 예상에 뒀다면 이런 소송전은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국내 조선업계 전문가가 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 케이시(KC)-1을 둘러싼 소송전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며 내놓은 대답이다. 한국형 화물창은 국내 조선업계가 프랑스 기업 지티티(GTT)에 엘엔지 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지불하는 100억원의 로열티를 절감하기 위해 10년 동안 개발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한 선박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업에 참여한 이해관계자들 간에 치열한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중공업·한국가스공사·에스케이(SK)해운 등 3개 회사가 서로를 고소하면서, 4개의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엘엔지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상태로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기체는 부피가 크고 밀도가 낮아 운반 효율성이 매우 낮다. 액화시켜 밀도를 높여야 운반 효율성이 높아진다. 엘엔지를 싣는 화물창은 극저온 상태를 견뎌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선박 화물창 원천 기술은 프랑스 지티티가 가지고 있고, 국내 조선소는 이 회사의 설계대로 건조할 뿐이다. 물론 건조하는 데도 뛰어난 기술력이 필요하다. 중국이 아직도 지티티 기술을 적용한 엘엔지 운반선 건조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유다.

이에 국내 대형 조선 3사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은 한국가스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과제에 함께 참여해 2004년부터 한국형 화물창을 개발했고, 2014년 실제 건조에 들어갔다. 삼성중공업이 선박을 건조하고, 에스케이해운이 한국가스공사와 운송 계약을 맺어 선박을 운영하기로 했다. 2018년 초 2척의 선박 에스케이세레니티·에스케이스피카가 완성됐다.

그러나 에스케이세레니티의 첫 운송에서 ‘콜드스팟’ 현상이 나타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콜드스팟은 화물창 내 초저온 상태의 엘엔지에서 발생한 냉기가 흘러나온 뒤 선체까지 도달해, 선체 온도가 정상 기준보다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3차례 수리를 진행했지만 같은 문제가 반복됐고, 3개 회사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책임을 서로 묻다가 결국 법정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먼저 에스케이해운은 안전성 문제로 선박 운항이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다. 반면 삼성중공업·한국가스공사는 충분히 운항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운항 가능성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인 삼성중공업과 한국가스공사는 결함 책임을 두고는 대립한다. 한국가스공사는 삼성중공업이 화물창 제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삼성중공업은 한국가스공사의 화물창 설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3개 회사와 조선·해운업계 이야기를 두루 들어 쟁점을 정리해봤다.

LNG 화물창 단면도 모형(위)과 LNG 화물창 단면도. 목포해양대학교·한국해양수산연수원 제공.
LNG 화물창 단면도 모형(위)과 LNG 화물창 단면도. 목포해양대학교·한국해양수산연수원 제공.

쟁점1: 조선사 의견, 반영 안 됐다?

한국형 화물창 개발방식을 짧게 요약하면 ‘육상 엘엔지 저장시설을 선박에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가스공사가 가진 육상 엘엔지 저장시설 기술을 선박에 적용해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해상은 육상과 비교해 더 거친 환경에 노출된다. 땅 위 설치한 저장시설은 고정돼 움직이지 않지만, 선박은 바다 위에서 수시로 움직이기 때문에 선박 화물창은 육상 화물창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가스공사와 조선사들 모두 ‘한국형 화물창에 조선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양쪽이 대는 이유는 다르다. 한국가스공사는 개발 기간 내내 조선업계가 비협조적으로 나왔다고 주장한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지티티와 함께 화물창을 만들어본 조선사들이 경험을 살려 의견을 전해줘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 와서 가스공사에만 책임을 넘기려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지만 한국가스공사 쪽에서 반영해주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화물창 사업에 참여했던 조선3사 관계자는 “조선소들이 한국형 화물창에 거의 기여한 게 없다”면서도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선박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의견을 계속 전했지만, 육상에서 이미 검증했기 때문에 바로 선박용을 옮기면 된다는 식으로 (가스공사가) 반응했다”고 말했다.

쟁점2: ‘콜드스팟’ 자칫 배가 깨진다?

문제의 시작은 ‘콜드스팟’이다. 에스케이해운은 콜드스팟으로 인해 선체에 무리가 가면서 선박 외판이 찢어지거나 선체가 부러지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운항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속은 일정한 온도 이하에서 충격이 쌓이면 갑자기 깨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에스케이해운 관계자는 “극저온의 엘엔지를 싣고 내리는 걸 반복하다 보면 콜드스팟 부위가 약해지면서 선체 균열이나 파공이 일어날 수 있다. 일단 선원들의 우려가 커서 승선을 꺼리고 있다. 선박 및 선원 안전을 위해 운항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해운업계에서는 에스케이해운이 제기하는 위험성이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과장됐다는 견해도 나온다. 엘엔지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 관계자는 “1∼2번 콜드스팟이 생기는 정도로는 손상될 정도로 배를 만들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에스케이해운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당장 위험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깅과 새깅에 대한 설명(위)과 항해 중 선체가 두 동강 난 일본 컨테이너 선박. 대형선박은 길이가 200m에서 400m에 달하기 때문에 태평양 등 대양 항해를 할 때 호깅과 새깅을 반복한다. 철근을 위아래로 반복해 구부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SK해운은 콜드스팟으로 약해진 선체 부위가, 반복되는 호깅과 새깅으로 깨지면서 선박이 두 동강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외항선박을 건조할 땐 선박이 투입될 항로의 과거 20년 날씨 데이터를 살펴본다. 그 가운데 가장 험했던 날씨를 기준 삼아 이를 견디도록 설계한다. 한두 차례 콜드스팟이 발생한다고 해서 위험 상황이 곧바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쪽이 대는 논거다. 기상청·일본선급 제공.
호깅과 새깅에 대한 설명(위)과 항해 중 선체가 두 동강 난 일본 컨테이너 선박. 대형선박은 길이가 200m에서 400m에 달하기 때문에 태평양 등 대양 항해를 할 때 호깅과 새깅을 반복한다. 철근을 위아래로 반복해 구부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SK해운은 콜드스팟으로 약해진 선체 부위가, 반복되는 호깅과 새깅으로 깨지면서 선박이 두 동강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외항선박을 건조할 땐 선박이 투입될 항로의 과거 20년 날씨 데이터를 살펴본다. 그 가운데 가장 험했던 날씨를 기준 삼아 이를 견디도록 설계한다. 한두 차례 콜드스팟이 발생한다고 해서 위험 상황이 곧바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쪽이 대는 논거다. 기상청·일본선급 제공.

쟁점3: 경쟁입찰 탓 저가운임이 문제다?

에스케이해운이 싼 가격에 계약한 선박 운송 계약을 파기하려고 콜드스팟을 구실삼아 운항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과거 한국가스공사는 해운사와 운송 계약을 체결할 때 원가에 수익을 얹어주는 방식을 택했지만, 2014년부터 경쟁입찰로 바꿨다. 국내 해운사들의 경쟁력이 충분히 올라왔다는 이유였다. 이때 한국가스공사는 총 6척의 엘엔지 운반선을 운영할 선사 공모에 나섰다. 2017년부터 20년간의 운송 계약이었다. 3개 해운사가 2척씩 계약을 따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에스케이해운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때 입찰에 참여한 선사들 모두 아직 손해를 보면서 운항하고 있다”며 “에스케이해운 입장에서 콜드스팟이 발생한 건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만약 적정 운임이 보장됐다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해운은 ‘저가 운임으로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선박 운항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에 비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라고 반박한다. 에스케이해운은 “그간 (콜드스팟 문제로) 운항하지 못해 손해를 본 금액이 2천억원을 넘어선다. 저가운임에 따른 손실은 2천억원의 10분의 1이 정도에 불과하다”며 “미국·한국 선급도 안전하다는 증서를 발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훈은?

현재 3개 회사는 문제 선박에 대한 선적시험을 진행 중이다. 법정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손해액을 어떤 방식과 비율로 산정할지 다투는 것은 지속하더라도, 해당 선박을 그대로 놀려 둘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현재 시험 운항을 진행하고 있고, 콜드스팟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운항을 재개한다.

그간 이 문제를 지켜봐 온 대다수 전문가들은 시행착오를 미리 생각하지 못해 발생한 갈등이라는 데 동의했다. 초기 기술은 반드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어떤 해결 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전에 논의해두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 세계 대형 엘엔지 운반선에 적용된 프랑스 지티티 화물창 제품 가운데 넘버96(No. 96)이 있는데, 오랫동안 기술을 개선하면서 숫자가 올라간 거다. 지티티 기술도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몇십년이 걸렸다”며 “협업 초기부터 시행착오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정리해뒀다면 이런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을 텐데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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