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전망이 더욱 나빠지면서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특히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견줘 현금보유고가 적고 사업도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돼, 반도체 업황 악화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란 전망이 많다.
13일 에프엔(FN)가이드 집계를 보면,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올 4분기는 물론 내년 실적 전망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불과 3개월 전만해도 올 4분기와 내년에 영업이익이 각각 2조원과 9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젠 영업적자를 당연시하는 상황이다. 현대차증권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올 4분기 매출은 8조9천억원, 영업적자 1조4천억원으로 기존 전망을 크게 낮췄다. 반도체사업 외에 스마트폰·가전 사업도 하는 삼성전자는 ‘안정적인 피난처’(이베스트투자증권)로 평가받는 등 상대적으로 양호한 평가를 받는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비해 현금 보유고가 적고 내년 투자 규모마저 줄여 향후 점유율에서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매출은 반도체시장 변화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올 3분기 매출 10조9830억원 가운데 디(D)램과 낸드 매출이 각각 6조9540억원, 3조377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내년 세계 반도체 매출은 5960억달러로 올해(6180억달러)보다 3.6% 줄어드는데,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16%로 감소폭 전망치가 더 크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도 내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5565억달러)가 올해보다 4.1% 줄어들고,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17.0%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미국 낸드 사업부(솔리다임)와 중국 다롄 낸드 생산시설 등도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솔리다임은 올 3분기에 이미 적자 상태다. 노종원 에스케이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지난 10월 “올해 초보다 (반도체 시장) 상황이 어려워, 솔리다임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다롄 낸드 공장도 1년 유예를 받긴 했지만,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새 장비 반입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증권사 분석가는 “에스케이하이닉스와 솔리다임이 낸드 제조 공정이 달라 기술적 시너지 효과가 미지수고, 중국 다롄 공장에 추가 투자하는 것이 옳은지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노근창 센터장도 “계약조건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굳이 중국 공장까지 인수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무적 부담도 계속 늘고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의 경우 순부채가 지난해 말 10조원대에서 올 3분기 말 16조원대로 증가해, 순부채비율은 55%에서 60%로 높아졌다. 솔리다임 인수 비용은 총 90억달러인데, 지난해 70억달러를 지불한 데 이어 2025년 3월 20억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또다른 증권사의 분석가는 “순부채비율이 50%대로 많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앞으로 현금 창출 능력이 떨어질 수 있어 불안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에스케이하이닉스 부회장의 과도한 확장 경영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부회장은 에스케이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에 깊이 관여했고, 2017년 등기이사로 선임돼 계속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2020년 솔리다임 인수 때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올 3월엔 영국 반도체설계 전문업체 에이아르엠(ARM) 인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그룹 내에선 ‘박 부회장이 지나친 확장 경영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다만 에스케이하이닉스 쪽은 “실적 악화는 대부분의 반도체기업이 겪고 있으며 증권사가 실적 전망을 낮추고는 있지만 내년 하반기에는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솔리다임 역시 1회성 비용 증가로 어려움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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