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 에이치디(HD)현대가 새로 출원한 시아이(Corporate Identity)가 지주회사 수익 몰아주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존 시아이는 에이치디현대를 비롯한 6개 계열사 공동 소유인데 비해, 새 시아이는 에이치디현대가 단독 소유하면서 상표권 사용료가 에이치디현대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치디현대는 지난 3월부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다.
29일 경제개혁연대는 에이치디현대,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등 6개사 이사회에 새 시아이 소유권과 상표권 사용료 등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앞서 에이치디현대는 지난 9월 새 시아이 4건을 특허청에 출원했다.
삼각형 두개 모양의 현재 시아이는 에이치디현대를 비롯한 6개 회사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0년 14개 계열사로부터 시아이 사용료 182억원을 받아 이들 회사가 나눠가졌다. 하지만 새 시아이를 에이치디현대가 단독 소유하며 상표권 수수료를 받을 경우, 나머지 5개 계열사는 상표권 수수료 수익이 사라지는 동시에 새 시아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처지로 몰린다.
대기업집단의 상표권 수수료는 지주회사의 주된 수익 가운데 하나였고, 일부 그룹에선 불공정한 거래로 지적받기도 했다. 디비(DB)그룹의 경우, 2017년 사명을 ‘동부’에서 ‘DB’로 바꾸면서 지주회사(DB Inc)가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2020년 주력 계열사 디비손해보험이 광고 등을 통해 새 상표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상표권 사용료 산정 때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경영유의’ 조처를 내린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에이치디현대의 새 상표가 현대중공업그룹 브랜드 가치 제고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지 그룹 상표 교체만으로 계열사의 손익구조가 변경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또 “에이치디현대 등 6개 계열사 이사회는 새 상표권의 공동 소유 여부와 사용료 지급 여부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존 시아이가 현대중공업을 상징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일부 계열사는 다른 형태 시아이를 써 혼선이 있었다”며 “창사 50주년을 맞아 향후 100년을 준비하자는 의미로 신규 시아이 도입을 검토 중이며, 계열사별로 이사회 결의를 거쳐 사용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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