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 공장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뻘이 섞인 흙탕물을 모두 퍼낸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열연 공장 지하설비 공간으로 내려가니, 물비린내와 기름 냄새가 동시에 훅 끼쳐왔다. 아직 물기가 완전 제거되지 않은 탓에 마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공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공간을 빼곡히 채운 설비, 파이프, 전선 표면 등에는 아직 기름과 뻘이 반씩 섞인 듯한 검은 때들이 말라붙어 있다. 공장 곳곳에는 분해된 부품과 파이프들이 세척의 손길을 기다렸다.
지난 23일 찾은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겉으로만 보면 침수 흔적을 대부분 지운 듯 했다. 포항제철소는 지난 9월6일 11호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폭우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제철소 지역이 모두 흙탕물에 잠겼다. 이날 포스코는 침수 피해 발생 3개월여 만에 공장 내부를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포스코는 둘러보는 코스를 3고로-1열연 공장-2열연 공장 순으로 마련했다. 각각 침수 피해가 없었던 곳, 침수됐지만 복구 완료된 곳, 복구 중인 곳 순이다.
포스코 직원들이 23일 2열연 공장 전기실 벽면의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덕에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제3고로에서는 시뻘건 쇳물을 뿜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쇳물의 온도는 1515도로, 분당 3~4톤이 맹렬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상 가동 중인 제1열연 공장에선 빨갛게 달아오른 두께 250㎜의 슬래브(철강제품을 만들기 전 쇳물을 굳힌 직사각형 반제품)가 롤러 위를 오가며 두께 1.2㎜짜리 얇은 철판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침수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2열연 공장 앞에 도착하자,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은 복구 인력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2열연 공장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공장 가운데 하나다. 제철소 침수의 주범으로 지목된 냉천 바로 옆에 있어서다. 이 공장은 포항제철소의 핵심 공장으로, 포스코의 연간 생산능력 1350만톤 가운데 500만톤을 2열연공장이 담당한다.
공장 내외부에선 흙탕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던 침수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일부 벽면에는 약 1.2∼1.5m 높이로 물에 잠긴 부분부터 아래까지 흙이 묻어있거나 물때가 껴, 침수 당시 수위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복구가 완료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지하 설비 공간은 더 심각했다. 슬래브가 지나가는 롤러 라인이 전부인 지상과 달리 열연공장의 지하 공간은 더 넓고 복잡하다. 압연 설비를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기계·전기설비가 설치돼 있어서다. 공장 안내를 맡은 허준열 포항제철소 압연부소장은 “2열연 공장의 지하설비 공간은 길이 450m 깊이 8m로, 이 거대한 공간이 모두 물에 잠겼다. 배수를 완료하는 데만 꼬박 4일이 걸렸고, 다 퍼내고 내려가니 30㎝의 뻘이 쌓여있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18개 압연공장 중 올해 안에 15개를 복구할 예정이다. 이날 현재 1열연·1냉연 등 7개 공장이 정상가동 중이다. 포스코는 침수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시점을 내년 2월께로 잡고 있다. 다만, 철강업계에선 12월 중순 재가동을 목표로 잡은 2열연 공장을 사실상 정상화의 기준으로 본다. 기존에 포항제철소가 공급하던 제품 가운데 아직 유일하게 생산을 못하는 제품이 스테인리스, 냉연제품인데 2열연 공장이 재가동돼야 생산이 정상화된다.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기록적인 폭우 탓에 물에 잠긴 포스코 1문 주변 모습. 독자 제공
침수 피해가 발생한 뒤 꾸려진 민관합동 철강수급조사단에 참여 중인 한 인사는 “2열연 공장의 재가동이 정상화의 바로미터다. 스테인리스 제품 생산이 정상화하면, 포항제철소가 생산 가능한 모든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며 “현재 스테인리스 수요가 줄어서 아직 버틸만한 재고가 남아있지만, 만약 포스코가 정한 정상화 시점을 넘기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는 국내에서 포항제철소만 생산한다.
관건은 전기설비다. 2열연 공장에서 복구해야 하는 설비는 크게 기계설비와 전기설비로 나뉘다. 기계설비는 물리적인 움직임만 되살리면 되지만, 전기설비는 전기 시설을 제어하는 기술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2열연 공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온 출구 쪽엔 새로 설치될 전기설비 수십 대가 파란 비닐을 휘감은 채 공장 투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준열 부소장은 “전기설비 복구가 2열연 공장 정상화의 열쇠다. 그간 축적된 포스코의 노하우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고,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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