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가동을 시작한 에쓰오일의 복합 석유화학 시설의 한 축인 잔사유 고도화시설 (RUC). 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S-Oil)이 7조~8조원을 들여 울산 산업단지 내 부지에 석유화학설비를 추가로 구축하는 내용의 ‘샤힌(shaheen)’(매의 아랍어)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이번 주 중 확정한다. 이 업체는 2019년에도 울산 복합석유화학시설(RUC/ODC)에 5조원을 투자한 바 있다. 정유사가 정유사업이 아닌 석유화학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추진 일정과 관련해 16일 “이사회 결정 과정이 남았지만, 연내에는 투자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에쓰오일은 2019년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 당시 2024년까지 7조원 가량을 투자해 스팀 크래커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같은 석유화학 원재료나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 생산설비 구축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17일 빈 살만 왕세자가 다시 한국을 찾는 것을 계기로 이를 구체화한 것이다.
에쓰오일은 “미래 성장 축으로 화학사업과 수소 등 미래 에너지를 늘려간다는 계획의 일환”이라며 “정유 관련 설비를 지금보다 줄이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신규 투자 비중을 석유화학 중심으로 늘려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정유사들도 올레핀을 비롯한 석유화학 사업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11일 지에스(GS)칼텍스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조7천억원을 투자한 전남 여수 제2공장 올레핀 생산시설 ‘엠에프시(MFC)’를 준공했다. 앞서 현대오일뱅크는 2014년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 ‘에이치피시(HPC)’ 공장을 설립해, 석유화학 제품 기초원료인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생산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국제 유가 등 경기 영향을 받아 출렁이기 쉬운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에너지원이나 연료로서의 석유제품 시장은 (탄소중립 등 각 국가의 에너지정책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사로서는 사업을 전환·확장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다들 석유화학설비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이 석유화학 제품을 직접 생산하면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석유화학 업체들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친환경’을 강조하면서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다. 정유사들은 정유부터 석유화학 제품 원료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 원료 수급 경쟁력에서 앞선다.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나프타를 원료로 투입하는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사용하는 반면, 정유사들은 나프타뿐 아니라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액화석유가스(LPG), 석유정제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에서 앞선다”고 강조했다.
정유사들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가격경쟁력만 놓고 보면 기존 석유화학 회사들이 정유사들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미 중동의 석유 회사들도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시작해 중국 등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존 석유화학 회사들은 범용 제품이 아닌 고부가가치 소재를 적용하거나 친환경 제품에 집중하는 것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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