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면, 국적 항공사 중 대한항공 쪽의 국제선 여객수송 점유율이 독과점 수준인 73%까지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항공사 합병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운임 인상을 불러와 소비자 편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후발 장거리 국적 항공사들을 키워 경쟁체제를 다시 만들고 항공사들의 공급 좌석 가격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진다.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윤문길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부) 연구팀에 의뢰해 분석한 ‘우리나라 대형항공사 통합 이후 항공산업 생태계 변화 전망과 정책 과제’ 보고서를 보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면 덩달아 합병 절차를 거치게 될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까지 합쳐 국제선 여객수송 점유율이 73%(이하 국적 항공사 여객수송 실적 기준)까지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교수 연구팀은 “한국항공협회가 제공하는 항공정보포탈시스템(에어포탈)의 2019년 1~12월 확정 자료를 토대로 점유율을 추산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발생 전인 2019년 기준 대한항공(33%)과 계열 저비용항공사 진에어(8%)의 국제선 여객수송 점유율은 41%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여기에 아시아나항공(23%)과 계열 저비용항공사 에어부산(6%)·에어서울(3%) 점유율이 합쳐지면 73%로 높아진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장거리에서는 모든 노선에서 경쟁제한성과 소비자 편익 감소가 우려된다. 특히 인천공항 출발 노선에 대한 시장지배력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문길 항공대 교수 연구팀 보고서 갈무리. 박상혁 의원실 제공
보고서는 이런 점을 들어, 장거리 국적 항공사 육성이나 중·단거리 시장에서의 국적 항공사 경쟁력 향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여객운송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항공시장 상황이 좋아지며 다른 국적 저비용항공사가 장거리 노선에 도전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성급히 외국 항공사에 주권을 양보하지 말고, 다른 국적 항공사가 대한항공의 장거리 경쟁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경쟁제한 발생 우려가 있는 26개 국제 노선과 8개 국내 노선에 신규 항공사 진입이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이후 대한항공이 인천~엘에이(LA) 노선에 베트남 항공사 등을 경쟁 항공사로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고, 국적 저비용항공사들은 한국 항공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티웨이항공과 에너프레미아가 장거리 노선 취항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소비자 편익 보호를 위한 항공시장 모니터링 제도 도입 등도 요구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이미 운영하고 있는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제도를 보완해, 가격 관련 감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항공사별로 전체 운송여객의 10%를 표본으로 추출해 항공권 판매가를 미국 교통부에 보고하게 하는 방식으로 항공권 가격에 대한 소비자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비자가가 아닌 인가운임(국제선)과 신고운임(국내선) 등 항공사가 부과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운임만 국토부가 관리하고 있다.
윤 교수는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마무리돼 통합이 이뤄지면 통합항공사(대한항공 그룹)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져 중·장거리 노선에서 경쟁항공사가 다시 필요해지게 된다”며 “신규 진입 항공사에 통합항공사 마일리지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경쟁을 지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국내 항공산업 정책의 콘트롤타워격인 국토부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을 담아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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