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테너 인플루언스맵 대표. 인플루언스맵 제공
“한국 기업들은 이제 글로벌 기업이고, 한국은 기술개발과 금융 측면에서 핵심 국가다. 한국 기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가 우리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활동을 추적할 필요가 있었다.”
유럽·호주·일본 등의 글로벌 기업과 금융사들의 기후대응 활동을 추적하고 영향을 분석해 온 글로벌 싱크탱크 ‘인플루언스맵(InfluenceMap)’이 4일 한국 기업과 산업협회 30곳의 기후대응 정책 참여 정도를 평가해 제공하는 플랫폼(누리집)을 열었다. 인플루언스맵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사파이어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플랫폼 오픈 사실을 알렸다.
인플러언스맵은 영국에 본사를 둔 비영리기관으로, 2015년 설립됐다. 딜런 테너 인플루언스 대표가 지난 1일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 누리집 개설 배경과 기대 효과 등을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 환경·지속가능성 관련 활동을 한 뒤 지금은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기후대응 전략에 대해 자문하는 작업을 하는 50명 규모의 전문가그룹을 이끌고 있다.
“인플루언스맵 플랫폼은 투자자, 시민, 정책 입안자들이 기후대응 정책 논의를 진척할 수 있도록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테너 대표는 기업의 기후대응을 어떤 식으로 정량화하고 평가했냐는 질문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 등이 지적한 과학적 판단에 기반해 점수를 매겼다”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 한국 누리집(korea.influencemap.org) 첫 페이지 중앙에는 국내 대기업 15곳과 협회 15곳의 기후대응 정책 참여 정도를 분석한 데이터 기반의 띠가 그려져 있다. ‘기후 성능 밴드’라고 이름붙여진 이 띠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대한 각 기업별 입장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반대(왼쪽)와 지지(오른쪽)로 표시한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시점 대비 상승폭을 2도 이하로 막기로 한 약속을 어떻게 보고, 이행에 어느 정도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식이다.
테너 대표는 이어 “유럽연합과 호주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방법론을 한국 기업에도 적용했다. 기후와 관련한 우리 기관의 견해는 반영하지 않고, 기업들이 공개한 증거만을 기반으로 했다”고 답했다. 평가를 하는 데 쓰여진 근거 자료를 묻는 질문에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부 발표 자료, 이와 관련해 기업이 공개한 지속가능보고서, 재무공시,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통해 전해진 대표이사 발언과 기업 보도자료 등의 공식적 약속을 분석하는 데 약 1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인플루어스맵 홈페이지. 삼성전자, 에스케이(주), 포스코 등 한국 대표 대기업 15곳은 기후 대응 지수를 평가할 때 D등급에 몰려있는 모습이다. 인플루언스맵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 기업들은 A~F 등급 중 D등급 그룹에 옹기종기 몰려있는 모습이다. 한국 기업 중 가장 낮은 D- 등급을 받은 기업은 지에스(GS)에너지였다. 에스케이(SK), 지에스칼텍스, 한국가스공사, 현대자동차는 D등급을 받았다. D+ 등급에는 에스케이하이닉스, 삼성전자, 에스케이이노베이션, 현대제철, 한국전력공사, 에스케이이엔에스, 엘지전자 등이 분포돼 있다. 롯데케미칼(C-)과 엘지화학(C+)은 상대적으로 높은 C등급을 받았다.
기업 단체인 산업협회 등급은 낮았다. B+ 등급을 받은 곳은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E-, 대한석유협회는 E, 민간발전협회는 E+, 한국석유화학협회와 한국철강협회는 D-,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는 D등급을 받았다.
한국 기업 중 D- 최하 등급을 받은 기업은 지에스에너지와 에스케이 지주회사였다. 인플루언스맵 홈페이지 갈무리
테너 대표는 “기업들이 산업협회 개혁을 이끌며 기후대응에 나서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도 다른 나라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산업협회를 개혁하는 것부터가 도전일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외국 기업 중에 A등급에 오른 곳들의 특징으로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등 에너지 전환을 지지할 경우 등급이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지국에서 임시 특파원 등으로 일하기도 한 장유나 인플루언스맵 한국팀장은 “현재 버전에는 기후변화와 관련성이 높은 국내 15개 주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자료도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