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중공업 해양공장 H도크에 설치돼 있는 2기의 16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의 전경. 현대중공업 제공
조선업계의 ‘인력 빼가기’ 논란이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로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중공업 등 4개 조선사가 “한국조선해양이 부당한 방법으로 핵심 인력을 빼갔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정위 신고 방침을 밝혔다. 업계에선 부당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증명하는 일이 까다롭다는 점을 들어 “인력을 빼앗긴 쪽이 경고성으로 신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25일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다른 회사들과 함께 한국조선해양의 부당한 인력 빼가기에 맞서 법무법인을 통해 공정위에 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은 다른 사업자의 인력을 부당한 방법으로 유인·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 신고에는 삼성중공업·대한조선·케이조선 등도 신고자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들 회사에서 한국조선해양으로 이동한 인력은 500여명에 이른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회사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을 거느리고 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벽에서 대형 엘엔지선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 대우조선해양 제공
공정위 신고를 준비 중인 조선사들은 “구체적인 부당 유인 정황을 잡아냈다”고 밝혔다. 지원자 소속 회사 인근에서 면접 보기, 지인을 통한 이직 권유, 월급 및 직급 상향 제안 등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사실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그간 조선업계에선 이런 방식으로 인력을 데려가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한국조선해양이 이런 관행을 깨고 대규모로 인력을 빼간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부당한 인력 빼가기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고 지원자가 동종사 출신이라고 해서 부여되는 우대는 없다”며 “경력직 채용 절차는 모든 지원자가 동등한 조건으로 진행됐다. 공정위 제소가 이뤄지면 절차에 맞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조선해양이 핵심 인력을 찍어 빼갔을 가능성은 있다. 국내 조선사 인력은 학연·업무 등으로 얽혀있다. 채용 지원을 권유하거나 지원자의 평판을 조회하기 매우 쉬운 구조다. 특히 조선사 핵심인력인 엔지니어들은 출신학교가 한정돼 있다. 서울대·부산대·인하대·충남대·울산대·창원대 정도로, 학교별 모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또한 조선학회 내에 분과 모임에서도 현직자들이 활발히 교류한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4개 회사의 신고가 공정위 제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공정위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에 따르면, ‘부당 유인’ 판단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해당 인력이 사업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 채용에 사용된 수단, 통상적인 업계의 관행, 관련 법령 등이다. 둘째는 매출액의 상당한 감소, 거래처 감소 등으로 현재나 미래의 사업활동이 상당히 곤란하게 되거나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 한국조선해양이 설계직 경력채용을 할 때 서류에서만 6배수가 접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 한국조선해양을 포함한 모든 조선사가 경력채용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조선해양에 대한 경고와 이직을 고민하는 내부 직원의 단속을 위해 공정위 제소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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