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원자력 기업들이 한국에서 노 났다.”
15일 에스케이(SK)가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 빌 게이츠 주도로 설립된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3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하자, 한 에너지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4월에는 지에스(GS)에너지·삼성물산·두산에너빌리티가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소형모듈원전 발전소를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국내 유일 원전 주기기(터빈과 원자로 등) 제작업체 두산에너지빌리티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원전 기술력을 갖춘 미국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전 제작사로 참여한다.
국내 대기업들은 왜 소형모듈원전 등 국외 원전 시장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장이 섰기 때문”이란다. 국외 소형모듈원전 사업 참여를 선언한 한 대기업의 원자력 업무 관리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최근 동향을 보면, 미국 정부가 소형모듈원전을 전략적으로 키워주고 있다. 대형 원전과 비교해 투자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폴란드나 루마니아 같은 저성장 국가들까지도 송전망을 더 추가로 설치하지 않고도 화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에너지 대기업 임원은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에너지 전환 시대에 석탄과 석유를 대체할 전력 생산원은 무엇이 있을까.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도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자처를 다양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에너지난이 심화하면서 유럽연합이 그린택소노미(녹색산업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기로 결정하는 등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참사 이후 감소했던 원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프랑스와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전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국내 원전 생태계 활성화 및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앞다퉈 추진 중이다.
국내 에너지 시장이 정부기관·공기업 등이 주도해왔기 때문에 민간 기업들이 끼어들기 어렵다는 점도 대기업들이 국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그동안 정부 주도의 원자력 기술 개발이 이뤄졌는데, 전력 생산말고도 수소 생산 등 다양하게 원자력을 활용하려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원자로를 만드는 업체가 없다 보니 민간에서도 이 영역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장이 섰을 뿐,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세계 원전산업 현황 보고서(WNISR)를 보면, 세계 원전 비중은 1996년 17.5%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낮아져 2020년에는 10%까지 내려갔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원전 비중이 평행선을 유지했다. 원전을 다시 확대하자는 나라도 있지만, 안전성과 경제성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원전을 미래 에너지원으로 삼겠다고 결정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럽연합도 그린택소노미에서 원전을 포함시켰지만, 폐기물을 처리한다는 조건에서만 포함하기로 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일종의 원자력계를 위한 복지 정책에 기업이 투자에 나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뉴스케일이 미국에서 소형모듈원전(55㎿)의 안전성 인허가 검사를 완료했다고 하지만, 같은 핵발전이기 때문에 원전의 안전성 논란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또 소형모듈원전인데, 77㎿(메가와트) 소형모듈원전 12개를 묶어야만 비로소 경제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 해도 용량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원전에 가해지는 압력 등이 달라져서 안전성 인허가도 다시 받아야하기 때문에 아직 소형모듈원전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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