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의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 연합뉴스
직장인 이아무개(40)씨는 비싼 항공료가 부담스러워 그동안 국외출장을 다니며 쌓인 마일리지로 항공편을 이용하는 여름 휴가를 계획했다가 바로 접었다.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항공권이 없었다. 이씨는 “평일 새벽시간 등만 간간히 표가 있다. 여행 카페 게시판 글을 보면, 원하는 노선 좌석을 얻으려면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며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입하려던 계획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을 이유로 항공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연장한다고 밝힌 가운데, 소비자 쪽에선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항공권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여행 카페 게시판 등에는 “마일리지로 좌석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마일리지에 이끌려 그 항공사만 이용하게 되는데, 마일리지가 족쇄가 된 느낌이다”,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좌석을 늘려달라”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국적 항공사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대형 항공사들이 마일리지로 고객을 유치·유지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탑승 거리(항공권 가격)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며 항공권 구입과 좌석 승급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부채’로 잡힌 마일리지 소진책과 항공사들의 제휴 마케팅 전략에 따라 지금은 호텔·놀이공원 이용, 가전제품 구입, 항공사 운영 쇼핑몰 이용 때도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마일리지 항공권 구입을 시도해본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마일리지 좌석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마일리지 마케팅을 벌이는 항공사에 ‘2019년 1월부터는 전체 공급 좌석의 5% 이상을 마일리지 좌석으로 할당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각 노선별로 마일리지 좌석 수와 비중이 얼마나 있는지를 항공사와 국토부 모두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토부(항공산업과)에 코로나19 대유행 발생 전인 2019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월별 마일리지 좌석 할당 비율과 판매량’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심 의원의 자료 요구에 “항공사들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대외불가 결정을 했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항공사 관계자들은 <한겨레>에 “국토부에는 다 보고하니 그 쪽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국토부와 항공사 모두 마일리지 좌석 수·비중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국회 자료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따로 “항공사들이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정부의 5% 의무 할당 권고를 이행하고 있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분기별로 마일리지 좌석 할당 비율을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공시를 확인해보니, 대한항공은 지난 1분기 마일리지 승객 탑승거리는 3억8300만㎞, 아시아나항공은 1억8900만㎞라고 명시해놓은 게 전부였다. 항공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노선·시간대별 마일리지 좌석 수와 비중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매 항공편마다 마일리지 좌석 수와 비율을 공개하면, 수익과 직결되는 좌석 운영 노하우 등 영업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항공사도 예약 등급별 좌석 수를 얼마나 배정하고 운영하는지 공개하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마일리지 좌석 수와 비율은 영업상 대외비로 간주된다. 예약 유입 상황에 따라 마일리지 좌석을 공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으로 두 항공사간 경쟁이 사라지며 마일리지 활용 조건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소비자 쪽에선 국토부가 관련 정책을 강화하고 이행 여부에 대한 감시를 꼼꼼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김대규 서울디지털대 법무행정학과 교수는 “소비자 유인책인 마일리지의 사용 권리가 소비자에게 온전히 없고 항공사들이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희석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항공사 쪽에선 영업비밀인 좌석 배치 등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사용권이 침해받고 있지 않는지 국토부에 모니터링 강화를 요청하는 것도 대응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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