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직원들이 창원2공장에서 제조된 건조기를 검사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가전은 물론이고, 티브이(TV) 재고가 늘어나 걱정입니다. 작년 연말 예상치보다 2분기 실적이 나빠졌는데, 3분기는 더 나빠질 전망입니다.”(전자 업계 임원)
올 하반기 경기 침체 먹구름이 짙어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자 업계에서도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전·티브이·스마트폰·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전자통신(IT) 업종 전반에 걸쳐 2분기는 물론 향후에도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점쳐져서다. ‘빙하기’ 전망이 큰 가운데, 각 업체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 경기 하락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등 주요 전자업체의 1분기 재고자산이 50% 이상 증가했다. 삼성전자 재고자산은 47조59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4% 늘었고, 엘지전자는 62.5%, 에스케이하이닉스는 68.1%, 엘지디스플레이는 79.9% 증가했다. 생산된 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였다는 뜻이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주요 제품의 출하량·가격 하락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최근 올해 세계 티브이 출하량을 2억879만대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전망치에 견줘 280만대 이상 낮아졌다. 지난해 실적과 비교하면 474만대(-2.2%) 가량 줄어든 규모이다. 다만, 올레드(OLED) 티브이는 올해 800만대로 147만대(22.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카운터포인트는 이 달 초,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이 13억5700만대로 전년보다 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5월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10% 줄어든 9650만대에 그치는 등 시장 감소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월 스마트폰 출하량이 1억대에 못 미친 것은 202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폴더블폰은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엘지디스플레이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량(매출액 기준)을 점유하는 디스플레이 업계 가동률도 떨어지고 있다. 옴디아는 6월 디스플레이 업계 가동률을 77%로 추정했다. 지난해 80%대 이상을 기록하던 가동률이 뚝 떨어져,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셈이다.
반도체 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 옴디아는 디(D)램반도체 평균 판매 가격이 0.44달러(1Gb 기준)로 지난해보다 0.9%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 전자업체 임원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중국의 봉쇄 조처로 중국 시장 수요가 줄어든 데다 원자재값·물류비 상승까지 겹쳐 어려운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으로 시장이 계속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증권사는 주요 전자업체들의 주가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신영증권은 최근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8만9천원으로 7% 낮췄다. 가전·스마트폰 실적 하락과 함께 향후 메모리 반도체 가격마저 내려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자업체들은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초격차 기술로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부가 제품 판매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엘지전자는 “올레드 티브이 등 프리미엄 시장에서 차별적 경쟁력으로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엘지디스플레이는 “올레드와 하이엔드 엘시디(LCD) 제품군을 중심으로 성과를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고사양 서버 수요 증가에 대응한 서버용 디램, 기업용 에스에스디(SSD·낸드플래시 기반 데이터 저장 장치) 시장에 집중해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프리미엄 제품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제품가에 반영할 수 있고, 쉽사리 수요가 줄지 않는다”며 “경기 하락기에 전자업체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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