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의 대한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 음식량, 음료의 종류, 담요 서비스 유무뿐 아니라 돋보기나 볼펜까지 서비스 여러 측면에서 양과 질이 떨어졌다.” (14년차 객실 여성 승무원 ㄱ씨)
“인천-방콕 노선은 출발 시각이 한국 시간으로 늦은 오후라 새벽에야 현지에 도착한다. 이 때문에 기내용 담요가 필수품이지만, 최근에도 담요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27년차 객실 남성 승무원 ㄴ씨)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부실 논란과 관련해, 지난 10~13일 대한항공 14~27년차 객실 승무원 3명에게 현재 상황과 원인 등을 물었다. 승무원들조차 기내 서비스 질 하락에 공감하며 우려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문제의 핵심은 회사 쪽의 지나친 ‘비용 절감’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상회복 속도가 빠른데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다 보니, 여전히 탑재 물품이 부족하고 승무원들도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인건비 절감 목적이 지나쳐 제대로 된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ㄴ씨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무렵 기종에 따라 정해두었던 승객 수 대비 승무원 수를 회사에서 줄였다고 설명했다. 인건비를 줄이는 과정이라고 승무원들은 이해하고 있다. 보잉 747-800기종의 경우, 일반석 최대 탑승 승객 수가 314명이다. 이 항공기의 일반석 승객 응대 승무원 수는 2018년 최대 9명이었으나 지금은 8명으로 줄었다. 2018년에는 314명의 60%인 188명의 승객이 탑승할 경우에 8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ㄱ씨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영공 통과가 중지돼 항로가 바뀌며 비행 시간이 늘었고, 5월까지는 ‘당일치기’로 동남아를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륙 후 식사 서비스를 하고 면세품 판매와 소등까지, 기존에 2시간 걸리는 일을 3시간에 걸쳐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무원들은 ‘탑재 제품 부실’도 회사 쪽이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태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노조 부지부장은 최근 온라인 카페 등에서 확산된 대한항공 담요 서비스 부실 관련 논란에 대해 “목적지 공항에서 현지 케이터링 업체나 청소 직원들을 통해 세탁한 담요 등을 실어야 하지만, 현지에서 승무원의 서비스 업무를 보조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은 채 비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회사가 승무원에게 현지 공항에서 할 일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무원들은 회사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돌아올 때 사용할 기내 용품까지 한국에서 출발 비행기에다 실었는데, 최근 승객이 늘면서 코로나19 당시보다 탑재 물품이 갑자기 늘면서 다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담요 뭉치를 화물칸이 아닌 승객들 짐을 올리는 짐칸에 넣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ㄴ씨는 “좁은 공간에서 생수병이나 담요 같이 무거운 짐을 옮기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의 근골격계 질환 유발 가능성도 커진다”며 “기존 고질적 병폐들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회사와 승무원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대한항공 사내 접속망인 ‘한웨이’ 안에 익명 게시판이 있지만, 문제제기를 할 경우 글쓴이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블라인드’에서 더 많은 소통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사측은 현장 직원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140여명의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13일부터 김포공항 정문 근처와 국내선 2층 등에서 “객실 승무원 인건비 아끼지 말고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에 투자하라”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5년차 객실 여승무원 ㄷ씨는 “지금 대한항공은 직원들의 희생만 요구하고 있다”며 “흑자를 내는 회사가, 여객 수요가 늘었는데도 승무원들의 추가 출근에 소극적이다. 무급휴직했던 5급 이하의 후배를 보면서 선배로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14일 김포공항 정문 앞에서 시위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노조원. 노조 제공
앞서 <한겨레>는 지난 7일과 14일 ‘
대한항공 기내식 서비스 논란’ 등의 기사를 통해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 부실 문제를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됐던 서비스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의 실수 가능성 등을 지적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14일 “기내 승무원은 대형기 기준 일반석 승객 39명, 소형기 기준으로 일반석 승객 36명당 1명”이라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사업량을 감안해 매월 적정 인원을 산정해 인력을 운영했고,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내식 서비스 부실과 담요 부족 등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고객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승객과 승무원의 대면접촉을 최소화하고 기내 위생을 강화하기 위해 기내식 및 서비스 절차를 간소화한 바 있다. 지난달부터 단계적으로 서비스 정상화를 진행 중이지만, 해외 현지 방역정책 등에 따라 기내식 및 물품 등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모든 서비스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우리 유선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