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부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롯데케미칼 2030 비전·성장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대안)’이 통과되면서 수소 에너지 사업에 뛰어든 기업에 ‘파란 신호’가 켜졌다. 지난 24일 대구에서 열린 2022세계가스총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안정적 수소 공급망 구축’ 등 수소로의 전환을 독려하기도 했다. 에너지 분야를 다루는 법무법인(로펌)들도 기업을 상대로 수소법 해설을 진행하는 등 업계는 들뜬 분위기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이용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그린 수소’ 공급까지 이어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수소는 자연 물에 흔하게 존재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탈탄소 시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궁극의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수소 관련 법을 제정한 정부가 순차적으로 관련 법을 제정하고 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의 핵심은 ‘청정 수소’ 사용 촉진을 위한 인증제를 도입하고, 청정수소 발전 구매를 의무화(CHPS)하는 등 등 수소 경제 육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30일 에너지 업계 한 직원은 “각 기업들이 축구장에 입장해 경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경기 규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규정이 이제야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개정안은 ‘청정 수소’ 개념을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 분해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생산하는 ‘그린 수소’로 고정하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만 맞추면 되도록 했다. 천연가스 공정 과정에서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블루 수소’나 원자력 발전을 이용해 생산하는 ‘핑크 수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된 수소 중 어떤 수소를 청정 수소로 볼 것인지는 추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린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전해 장치와 재생에너지 설비가 필요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탄소 포집·저장 기술이나 그린 수소 생산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청정 수소’의 개념을 고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연이어 발표하는 수소 사업은 기존에 추진하던 천연 가스 기반 블루 수소나 원자력 발전 융성을 표방한 현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핑크 수소 생산 움직임이 주도적이다. 지난 19일 2030년 매출 목표 50조원 중 수소 분야 매출액을 5조원으로 높인 롯데케미칼도 최종적으로는 그린 수소 공급을 지향하지만, 기존 공정 과정을 활용한 블루 수소부터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에스케이이앤에스(SK E&S)도 호주에서 진행 중인 바로사 가스전에서 호주 기업의 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활용한 블루 수소 이용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7일 두산에너빌리티, 포스코홀딩스, 원자력학회 등과 원자력 청정수소 기술 개발 및 상용화 협약을 체결했다. 태양광·풍력 발전 사업을 함께 하는 한화의 그린 수소 사업도 아직은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해 석유화학 업계의 한 직원은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기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체 6~7%로) 너무 적다. 기존 먹을거리인 가스 사업을 통한 블루 수소부터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2대구세계가스총회(WGC)에서 축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기업은 수소 경제 육성 분위기에 격앙돼있는 모습이지만, 공급 방식이나 수요처 확보에 대해서는 아직 ‘안갯속’이라는 지적이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가스 가격이 높은데, 탄소포집저장기술까지 더할 경우 블루수소의 단가는 더 높아진다. 이 경우 블루수소의 경제성이 있을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수소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이 많은데, 어떤 수소를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안 보인다. (수소 경제를 위해서는) 향후 10여년 동안은 기술 연구·개발이 우선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1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수소마켓 인사이트’ 기조연설자로 나선 알리 이자디 ‘블룸버그 뉴 에너지파이낸스’ 아태지역 리서치 총괄은 “그린 수소 생산을 위한 전해조 가격은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블루수소보다 그린수소가 가장 저렴한 수소 에너지원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