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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뉴스AS] 조선업 호황이라는데…중형 조선사는 왜 울상?

등록 2022-05-17 08:59수정 2022-05-18 02:44

중형 조선사들 ‘선수금환급보증’ 한도 꽉 차
호황 시작됐지만 추가 수주계약 완료 못해
금융권, 저가수주·인력부족 우려해 발급 꺼려
2019년 경남 통영시 광도면 성동조선해양의 도크가 비어있다. 통영/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9년 경남 통영시 광도면 성동조선해양의 도크가 비어있다. 통영/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조선소가 선박 건조 수주 계약을 맺으려면 은행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을 발급받아야 한다. 수주받은 선박을 완성하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린다. 선주는 수백·수천억원에 달하는 선박 값을 특정 건조단계마다 5차례에 걸쳐 낸다. 만약 조선소 경영이 악화돼 선박이 완성되기 전에 파산해버린다면? 선주는 그동안 낸 돈을 모두 날려버리게 된다. 그래서 은행은 ‘조선소가 망하더라도 너희가 낸 돈은 우리가 보상해주겠다’는 내용의 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해주고 선주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중형 조선소 가운데 상당수가 금융권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을 받아내지 못해 추가 수주 계약을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중형 조선소들과 금융권은 올해 적용 가능한 선수금환급보증 한도를 설정해뒀는데, 조선업 호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되면서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한도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실제로 2억2천만달러의 한도를 설정해둔 대선조선은 이미 한도액의 99%를 채웠다. 이 때문에 1월6~7일 계약한 1000티이유(TEU)급 컨테이너선박 4척의 선수금환급보증을 받지 못해 계약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시황이 좋지 않았던 과거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증 한도를 잡아둔 터라 현재 시장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 시황이 회복되면서 선가(배값)도 많이 올랐다. 부실 수주가 아닌 정상 수주를 하고 있는데도 금융권이 추가 담보를 요구해서 중형 조선사들이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2016년 경남 창원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의 야드(작업장) 전경. 에스티엑스조선해양은 2021년 7월 민간에 매각돼 케이조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창원/연합뉴스
2016년 경남 창원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의 야드(작업장) 전경. 에스티엑스조선해양은 2021년 7월 민간에 매각돼 케이조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창원/연합뉴스

중형 조선사들이 금융권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조선사 쪽은 “금융권이 매각할 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더니, 매각이 완료되자 태도가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중형 조선소는 지난 10여년간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 관리 아래에 있었다. 지난해에야 민간에 매각되면서 채권단 관리를 졸업했다. 대선조선은 동일철강, 케이조선(구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은 케이에이치아이(KHI)컨소시엄, 에이치제이(HJ)중공업(구 한진중공업)은 동부건설이 인수했다. 대한조선은 현재 막바지 매각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 중형조선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매각할 때 향후 3~5년간은 잘 도와주겠다며 고용 유지 조건을 수용하도록 했지만, 해가 바뀌자 조직과 담당자가 교체됐다. 새 담당자는 2~3년 견딜 돈도 없으면서 왜 샀냐는 답답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금융권도 할 말은 있다. 과거 중형 조선사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대규모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갚아줘야 할 선수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자, 금융권은 조선소에 경영자금·건조비용 등을 추가로 대출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선박을 완성해 선주에게 인도하면 선수금을 물어내지 않아도 돼서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한겨레>에 “선수금환급보증은 보증료가 1%에 불과해 은행 입장에서는 큰 돈이 안된다. 작은 수익에 발목이 잡혀 수년간 조선소에 대규모 자금을 대왔던 경험이 있다 보니 (한도 확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6년 경남 거제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용일 &lt;한겨레21&gt; 기자 yongil@hani.co.kr
2016년 경남 거제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조선업계가 인력난에 직면한 점도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변수다. 금융권은 현장 인력이 대형 조선사로 쏠리면서 중형 조선사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선박 건조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한다. 반면, 조선업계는 선수금환급보증을 받지 못해 인력 구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중형 조선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수주 계약을 따냈다는 뉴스만 보고 오지 않는다.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여부까지 확인하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선수금환급보증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한 불황-호황기 불일치에 따른 과도기 지원 정책과 무역보험공사의 복보증(재보증) 규모 확대 등을 통한 발급요건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형조선소는 10∼15척의 선박을 수주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데, 올해 선가(배값)가 많이 올라서 지난해 설정한 보증 한도 내에서는 10∼15척을 수주하기 어렵다”며 “좋은 선가에 수주해서 정상적인 납품이 가능한 선박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평가해 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해주는 쪽으로 조선사와 금융권이 협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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