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를 시작으로 에스에스지(SSG)닷컴과 11번가, 오아시스 등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이 기업공개(IPO)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켓컬리 누리집 갈무리
코로나19 특수를 등에 업고 기업공개(IPO)를 준비해온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분위기 확산 ‘악재’를 만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상회복 흐름에 따른 소비패턴의 변화로 이커머스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기업가치를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하거나 상장을 철회해야 할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28일 유통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마켓컬리를 시작으로 에스에스지(SSG)닷컴과 11번가, 오아시스 등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이 올해 안 또는 내년 초 상장을 목표로 준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1호’ 이커머스 상장사 자리에 가장 근접한 기업은 새벽배송 전문업체 마켓컬리다. 이 업체는 지난달 말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한 일정을 고려할 때, 빠르면 5월 말 심사 승인이 나면 6월에 공모를 거쳐 7월에는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가총액은 4~6조원 정도로 예상한다.
일상회복에 따른 성장세 둔화 전망과 물류 투자 증가로 커지는 적자 폭이 걸림돌이다. 마켓컬리의 지난해 매출은 1조5614억원으로 전년에 견줘 64% 증가했으나, 영업적자는 2177억원으로 전년(1163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신선 물류센터 구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새벽배송의 특성상 매출 대비 적자가 늘 수밖에 없어서다. 여섯번째(시리즈F)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5.75%까지 낮아졌고 글로벌 사모펀드가 2~3대 주주에 오른 상황을 고려할 때 상장 뒤 차익 실현 과정에서 주가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변수다.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에스에스지닷컴은 올해 말~내년 초 상장을 목표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이마트의 지원사격을 받아 올해 최고 기대주로 꼽힌다. 에스에스지닷컴이 예상하는 시가총액은 10조원 수준이다. 이커머스 전반의 적자 상황과 쪼개기 상장 논란 등이 변수다. 에스에스지닷컴의 지난해 거래액은 5조7174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업적자도 107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새 정부가 분할 자회사 상장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어서 이마트 자회사 격인 에스에스지닷컴의 ‘쪼개기 상장’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에스에스지(SSG)닷컴의 물류센터인 네오003에 쓱배송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SSG닷컴 제공
1세대 이커머스로 꼽히는 11번가도 최근 국내외 증권사 10여곳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는 등 상장 준비 절차에 착수했다. 2018년 에스케이(SK)플래닛에서 분사할 당시 국민연금 등에서 5천억원을 투자받으면서 5년 내 상장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져, 내년 상장이 예상된다.
마켓컬리와 함께 새벽배송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오아시스마켓은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마켓컬리가 미국 증시 상장을 시도하다 포기한 점 등을 교훈 삼고, 새벽배송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냉랭한 상황임을 감안해 비교적 안전한 길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켓컬리가 전국배송 등 큰 판을 짤 때도 오아시스는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 배송 정책으로 이커머스 중 유일하게 지난해 57억원 흑자를 냈다.
이들 업체 쪽에선 쿠팡 주가 흐름도 악재다. 지난해 3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첫날 42.25달러로 장을 마감했던 쿠팡 주가는 27일 13.12달러까지 폭락했다. 한때 100조원을 넘었던 시가총액도 30조원으로 줄었다. 미국 금리 인상과 앤데믹 시대 이커머스 성장성 우려 등으로 주요 투자자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커머스 업체 임원은 “이커머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빠른 배송의 핵심인 물류시설 투자를 위한 상장 필요성이 커진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이해관계가 기업공개와 맞물려 있어 상장 뒤 주가가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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