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잠시 주춤했던 경유값이 지난주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넘어서는 주유소도 속출하고 있다.
유럽 쪽 나라들의 경유 재고 부족 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이라 국제 경유값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국내에선 화물차 운전자와 농·어민 등 생계형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28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를 보면, 지난 25일 기준 자동차용 경유 국제 가격은 배럴당 148.81달러였다. 3월 셋째 주(14~18일) 배럴당 평균 120달러 선에 머물렀던 경유값이 지난주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는 모습이다.
경유 국제 가격 상승으로 국내 주유소 경유 판매가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경유에 부과되는 유류세는 휘발유보다 ℓ당 200원 정도 낮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경유 판매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두 유종 간 가격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 일부 주유소에선 경유 판매가가 휘발유 판매가를 추월하기도 했다. 평균 가격 기준으로는 아직 휘발유보다 높지 않지만, 이대로라면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경유값 역전 현상’이 재연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경유는 2008년 5월29일 사상 처음으로 평균 가격(ℓ당 1892.24원)에서 휘발유(ℓ당 1888.40원)를 넘어섰다. 경유는 이후 20여일간 근소하게 휘발유보다 높은 가격을 유지했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이 잠정적으로 경유 수입세를 줄이면서 국제시장에서 경유가 중국으로 더 흘러들어간 결과였다. 유럽연합(EU)에서 환경친화적이라고 알려진 디젤 차량이 확대되면서 경유 수요가 급격하게 늘기도 했다.
지금은 러시아 사태로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길이 막히며 연료 수요가 경유로 이동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유 재고가 평균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러시아 사태 여파가 겹치면서 유럽의 경유 재고량이 더 줄어들고 있다. 지난 25일 <블룸버그> 보도를 보면, 영국의 경유 비축량은 36일분밖에 되지 않는다. 사정이 가장 안 좋은 룩셈부르크의 경유 비축분은 고작 13일분에 불과하다. 유럽에선 보통 100일이 넘는 비축분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경유를 많이 소비하는 독일도 비축분이 70일분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공급 확대만으로는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유럽에선 석유제품 생산 공장이 풀 가동되는 상황이다. 탈탄소 여파로 더 늘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석유제품 주요 생산국 중 하나인 미국도 대부분 휘발유를 생산한다. 조상범 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유는 운송용 말고 산업용 수요도 많다. 러시아 사태 이전부터 유럽에선 경유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충격으로 수급 균형이 크게 어그러졌다”며 “종전이 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당분간은 유럽 발 수급 불균형으로 경유값이 높게 유지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휘발유·경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 조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유는 유류세 비중이 휘발유보다 낮아 유류세 인하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관계자는 “경유값이 계속 강세를 보이면서 화물차 운전자와 농어민을 포함한 산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가 경유값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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