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산업·재계

‘장자 승계’ 전통 깬 범LG가 아워홈…‘재계 타산지석’ 구지은에 달렸다

등록 2022-02-14 04:59수정 2022-02-14 13:08

장남 구본성, 횡령 등 논란에 퇴진
막내딸이 능력 인정받고 경영 나서
퇴행적 재벌 문화 탈피 의미 있지만
“가족 승계는 못벗어나” 아쉬움도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부회장). 아워홈 누리집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부회장). 아워홈 누리집

구본성 전 부회장(이하 구 전 부회장)의 회사 지분 매각 및 경영 퇴진 방침 발표로 ‘범 LG(엘지)가’ 식품기업 아워홈에서 여성 경영인 체제 및 여성 승계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구자학 아워홈 창업자 겸 회장의 막내 딸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부회장·이사 구 대표)가 스스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 아워홈 오너가 속한 범 엘지가의 오랜 ‘장자 승계 원칙’ 가풍을 깬 사례여서 눈길을 끈다. 경영 능력과 상관없이 장자·아들 중심 승계 및 경영체제를 고집하는 국내 재벌 풍토에서 ‘타산지석’ 사례로 삼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만경영·불법행위로 여동생들에게 밀려난 장남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구 전 부회장의 회사 지분 매각 및 경영 퇴진 발표는 방만경영과 회삿돈 배임·횡령 의혹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내린 ‘최후의 결정’이란 분석이 많다. 그가 엘지가의 장자승계 전통에 따라 경영에 참여한 2016년 아워홈의 영업이익은 800억원대였지만, 2018년에는 600억원대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창사 후 첫 적자를 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임을 감안해도 경영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어 2020년 9월 벌어진 보복운전 사건은 결정타였다.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차량을 앞질러 급정거해 상대 차량을 파손하고 길가에 있는 상대 운전자를 차량으로 몰아붙인 혐의다. 구 전 부회장은 이 행위로 지난해 6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여동생들은 1심 선고 뒤 힘을 합쳐 오빠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구 전 부회장 경영 참여 때 오빠 편을 들었던 장녀까지 여동생 편에 섰다. 아워홈 지분은 구 회장의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이 38.6%를, 세 딸 미현·명진·지은이 총 59.6%를 갖고 있는 비상장사다.

구 전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해임됐으나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었다. 대표이사 해임은 이사회 과반 결의로 가능하지만, 사내이사 해임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지분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구 전 부회장의 이사 자격은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 전 부회장의 방만경영과 배임·횡령 논란이 불거졌다. 2020년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구 전 부회장은 전년보다 70% 많은 299억원의 배당금을 가져갔다. 당연히 방만경영 지적이 일었다. 또한 2020년 3월 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가 연 60억원으로 정해졌는데도 구 전 부회장이 그 해 8월까지 받아간 보수가 83억원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며 횡령·배임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구 전 부회장 고소 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구 전 부회장은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구 전 부회장은 회사 지분을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처분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회사 지분 과반 이상을 보유한 세 딸들의 구 대표 지지 의지가 확고한 상황인데 누가 경영권도 없는 구 전 부회장 지분을 누가 사려고 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구 전 부회장이 사모펀드인 라데팡스 파트너스를 자문사로 선정해 아워홈 지분 매각 절차와 방식을 논의 중이라는 것도 추가 분쟁의 여지로 꼽힌다. 제 3자가 구 전 부회장 지분을 인수한 뒤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을 명분으로 경영 참여를 추진하며 경영권 분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워홈 내부 상황을 잘 아는 회사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구 전 부회장에 대한 회사 내부 신뢰가 무너져 그가 직접 다시 경영에 참여할 명분은 없지만, 그가 어떤 이유로 경영 퇴진을 발표했는지, 회사 지분을 어떻게 처분하겠다는지 등을 알 수 없어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벌가 눈총? 타산지석?

딸들이 힘을 합쳐 경영 능력·자격 부족을 이유로 장남을 최고경영자에서 몰아낸 아워홈 사례는 범 엘지가의 장자승계 전통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엘지 가는 장남이 경영권을 물려받고, 나머지 형제들은 계열사를 분리해 나가는 것을 원칙을 고수해왔다. 고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의 경우, 외아들을 잃자 동생 아들을 양자로 삼아 장자승계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구 대표가 이런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오빠에게 내줬던 회사 경영권을 다시 가져온 데는, 현장부터 10년 넘게 일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 대표는 2004년 4남매 중 가장 먼저 아워홈에 입사해 구매물류사업부장, 외식사업부장, 글로벌유통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이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급식사업 중심이던 아워홈의 사업구조를 외식사업 영역으로 다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5천억원대였던 아워홈 매출은 사업다각화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해 지난해에는 1조7200억원대에 달했다.

구 대표가 추가로 예상되는 경영권 분쟁에서도 여성 경영인 체제 및 여성 승계를 지켜내고, 재벌들의 ‘눈총’을 벗어나 타산지석 사례로 꼽힐 수 있을지는 오롯이 그의 경영능력에 달렸다. 재벌가를 중심으로 ‘얼마나 잘 하나 두고보자’는 시선이 많다는 걸 명심해서 처신하고 수완을 발휘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안팎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급식시장 상황을 타개하고, 신성장 동력으로 꼽아 추진 중인 해외사업을 어떻게 안착시킬지가 구 대표의 숙제”로 꼽힌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 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기업을 책임질 인재 풀을 장남 단 1명으로 완전히 좁히는 퇴행적인 문화에서 벗어났다는 데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가족 승계를 넘어 전문경영인 승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려하지 않고 자녀에게 무조건 경영권을 넘긴다는 우리 재벌 문화는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