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금속노련 전국삼성전자노조 간부들이 지난 4일 ‘삼성전자공동교섭단 2021년 임금교섭 노동쟁의조정신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하면서 창사 이래 첫 파업 가능성을 예고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 5개월간 진행된 임금교섭의 결렬 때문이지만, 그동안 노사협의회를 구실로 삼은 삼성의 지속적인 ‘노조 힘 빼기’와 불성실 교섭이 갈등의 본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4노조)는 지난 4일 회사 내 4개 노조가 꾸린 공동교섭단 명의로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고 6일 밝혔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5차례에 걸쳐 2021년도 임금교섭을 벌여왔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삼성전자가 노조와 임금교섭에 나선 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그동안 회사는 매년 2월 말~3월 초께 노사협의회와 임금인상률을 합의해왔다. 노조는 최초 요구안에서 전직원 연봉 1천만원 일괄 인상과 매년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 등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지난해 3월 사원 대표들로 구성된 노사협의회(한마음협의회)와 합의한 기존 2021년도 임금인상률(7.5%)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삼성전자는 매년 성과급을 지급하면서도,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의 몇 퍼센트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겠다는 기준이 없어 첫 임금교섭에서 그 룰을 만들고자 했다”며 “하지만 노사협의회와 합의한 내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회사 쪽 태도에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노사협의회란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서도 직원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30인 이상 사업장에 의무 설치되는 기구로, 삼성에선 ‘한마음협의회’란 이름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삼성이 과거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불법 지원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노사협의회가 대표성이 있어야 노조설립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고, 노조 설립 시 대항마로 활용”한다는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계획이 담겼었다.
삼성이 노사협의회의 결정 내용을 앞세워 임금교섭에서 사실상 노조를 ‘패싱’한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선 지난해 6월 노조가 임금교섭에서 기본인상률 6.8%를 요구했으나 회사 쪽은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4.5% 이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당시 노조 간부들은 적정 임금인상률 산출을 위한 회사 쪽의 자료 공개 등을 요구하며 2주간 파업에 돌입했지만, 끝내 노사협의회에서 정해진 임금인상률을 그대로 따르는 내용의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노조의 경우에는 지난해 10월 중노위에서 ‘임금총액 기준 6%를 인상하라’는 조정안을 받았지만, 회사의 거부로 조정이 결렬됐다. 이 회사 역시 ‘노사협의회와 합의한 인상률(5.7%) 이상의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해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삼성이 노조보다 노사협의회와의 대화에 무게를 두어 노조의 존재 가치나 역할을 위축시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 관계자는 “지난 연말 임금교섭 중에 회사의 특별성과급 지급 소식이 나와 사실 여부를 회사 대표 교섭위원에게 물었는데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들어주기 어렵다면서도 (노조와 합의 없는) 성과급을 뿌리면서 노조의 힘을 빼는 식”이라며 “교섭 때 노조가 요구했다 거절당한 복지제도 개선도 회사가 별도로 추진하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알려진다. 회사가 더 이상 노조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공식적인 회사의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노조의 중노위 쟁의조정 신청에 따라 꾸려지는 조정위원회는 10일간 노사 양쪽을 중재하게 된다. 노사 간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조정 중지’가 결정되면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해 파업 등의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다. 다만, 실제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쟁의행위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전국삼성전자노조의 조합원 수는 4500여명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공개적인 노조 활동에 나서겠다는 조합원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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